회의會議주의자들의 집짓기

'제라한'* 집의 탄생 - 관계를 담는 집 짓기

by 조선희
*제라한 - '제대로 된''진짜의' '완벽한'이라는 의미의 제주어. '제라진'도 같이 쓰인다.



건축사사무소와 계약을 하고, 본격적으로 집을 어떻게 지을지, 각자의 생각과 로망을 정리해 공유하고 중요한 사항들을 함께 결정해야 할 시기인데, 우리는 얼굴을 맞댈 수조차 없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던 탓이다.


뉴스는 온통 확진자의 동선과 접촉자 파악 이야기뿐이었다.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는 곧장 폐쇄됐고, 같은 시간대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죄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사무실에 확진자가 생기면 같은 공간에 있던 직원 모두가 검사 대상이 되었고, 양성 판정이 나오면 1주일 격리는 기본이었다. 스스로 조심하지 않아 감염되는 일이라도 생기면 말 그대로 ‘민폐 끝판왕’이 되는 분위기였다.


연말이 되자 5인 이상 집합금지령까지 내려졌고, 우리 다섯 명이 한자리에서 회의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동 자체가 통제되다 보니 서울–제주 간 항공료는 만 원 이하로 떨어졌고, 그마저도 가운데 좌석을 비워둔 채 운항했다. 이런 비현실적 상황 속에서 건축사무소 관계자들까지 모두 여덟 명이 한 번에 만나 회의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다행히 대안은 있었다. 비대면 화상회의.


설계가 진행되던 2021년 내내 우리의 주요 회의실은 온라인이었다. 평일 저녁은 물론, 주말에도 어김없이 온라인에서 얼굴을 맞댔다. 집의 전체 콘셉트를 정하고, 공유공간과 개인공간의 방향을 잡고, 각자의 로망이나 반드시 넣고 싶은 요소를 의논했다. 단체 대화방은 시도 때도 없이 불이 났고, 끝이 안 보이는 회의가 줄줄이 이어졌다. 이즈음 누군가 우리를 “회의(會議)주의자”라 불렀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세상 전체가 멈춰 선 그 시기, 서로 다른 도시에 흩어져 사는 다섯 ‘생판 남남’ 끼리의 집 짓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시간을 들여 중요하게 고민한 것은 ‘우리 집의 콘셉트’였다. 그게 결정되어야 공간의 구조, 성격, 규모, 인테리어 전반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회의를 거듭하며, 우리는 집의 방향성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돈이 덜 드는 집

우리 다섯의 평균 나이를 생각하면 이제부터는 나이 들어갈 일만 남았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늙어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집만큼은 유지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집이 아닐까.


일반 가정용의 3배 용량을 갖춘 태양광 발전 설비는 비누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설치하였다. 입주 후 2년 동안은 유난히 잦은 비와 흐린 날씨 탓에 기대만큼의 발전량은 아니었지만, 여름 한철 에어컨을 서로 눈치 안 보고 틀어도 전기요금이 4만 원을 넘지 않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인 투자였다.


비누의 집요한 탐구열과 실행력 덕분에 설치한 열회수 환기 시스템(일명 전열교환기) 또한 큰 몫을 해내고 있다. 이 장치는 실내의 오염된 공기를 내보내고,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끌어들이는 시스템인데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 필요가 없으니, 벌레와 미세먼지, 습기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는 ‘치트키’가 되었다. 제주의 유별나게 높은 습도는 20년 넘게 제주에 살아도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고난도의 컨디션이다. 이제는 열회수 환기 시스템 덕분에 거의 완벽에 가까운, 쾌적한 여름을 나게 되었다.


물론 태양광 설비와 열회수 환기 시스템은 건축비를 높이는 요소였지만, 나이 들어 쾌적한 삶의 질을 유지하게 해 줄 초기 투자로 보았다. 특히 열회수 환기 장치는 살면서 설치하기 어려운 시스템이기에 집을 지을 때 설치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경제적이다.


실은 돈이 덜 드는 집이란 곧 ‘손이 덜 가는 집’이기도 하다. 초록 잔디마당을 포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이 들어 직접 손질하기 어려워지면 결국 돈을 들여 관리인을 부르거나, 관리되지 않은 마당을 방치해야 할 것이니 차라리 처음부터 욕심을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기력은 딸리는데도 마당일을 ‘운동’이라고 자기세뇌하며 버거운 노동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늙어서도 살기 좋은 안전한 집

처음 건축사사무소에서 제안한 설계안은 가장 일반적인 단독주택 형태였다. 대지 전면에 마당을 두고 1층에 살롱과 주차장, 2·3층에 각각 두 가구의 공간을 배치한 수직구조였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할수록 이 방식은 우리에게 맞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아닌, 성향도 나이도 다 다른 다섯 명의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공간이라면 그에 맞는 건축 문법이 필요했다.


우리가 생각한 대안은 2층 규모의 중정식구조. 우리가 나이 들어서 쇠약해진 몸으로도 거동에 제한이 없으려면 3~4층의 수직구조보다는 2층 내외의 중정식 구조가 적절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노후에 3~4층 수직구조에서 살려면 가정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 여기에 최소 5평 정도의 면적이 필요하다. 소방법상 계단실도 반드시 있어야 하니, 이것저것 감안하면 ‘차 떼고 포 떼는’ 식의 건평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비하면 2층 중정식구조가 훨씬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모델이었다.


건축사들에게 변경을 요청했다. 처음 접해 보는 독특한 가족 구성원과 생활방식에 어울리는 구조 모색에 골머리를 앓던 건축사들은 좋은 방향 전환이라며 반겼다. 살아 본 결과 우리의 뒤집기 한 판은 썩 훌륭한 판단이었다. 속마당은 제주의 살벌한 태풍에도 끄떡없이 안온하고 아늑하다. 실로 초기 택호(宅號)인 ‘아늑헌’에 안성맞춤인 집이다. 건축사들 덕분에 이 같은 신속한 의견 반영이 이루어졌으니, 건축사사무소와 우리는 꽤나 '합'이 맞는 출발을 할 수 있었다.


허세를 버린 실용적인 집

우리가 짓고 싶은 집은, 요란한 인테리어나 과시적 설계에서 한 걸음 물러난 ‘허세 없는 집’이다. 남 보기에 예뻐 보이는가, 요즘 유행인가, 이 정도는 해야 하나? 그런 기준이 아닌, 실제 살면서 필요한가, 아닌가? 편리한가, 아닌가? 를 최우선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예가 폴딩도어였다. 탁 트인 뷰를 자랑하는 집들이 흔히 설치하는 멋진 아이템이지만, 우리는 과감히 포기했다. 그 이유는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한 마리만 들어와도 온 가족 밤잠을 설치는 게 여름 모기인데 제주에서, 활짝 열리는 폴딩도어는 거의 재앙 수준이다. 우리 집은 공원과 맞닿아 있고, 그 공원은 병문천이라는 생태 하천과 이어져 있다. 두꺼비, 도마뱀, 심지어 뱀까지 출몰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냉난방 효율도 떨어지기 십상이다.


아무리 예뻐 보여도 불편하거나 위험할 수 있는 선택은 우리 사이에서 ‘유혹의 골짜기’라 불렸다. 우리는 그 골짜기 앞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이 집은 우리가 함께 노후를 살아갈 공간이고, 어쩌면 이곳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우리 모두의 선택 기준을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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