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한'* 집의 탄생 - 관계를 담는 집 짓기
*제라한 - '제대로 된''진짜의' '완벽한'이라는 의미의 제주어. '제라진'도 같이 쓰인다.
집 짓다 10년은 늙는다는데, 그것도 생판 남남끼리... 괜찮겠어?
지인들의 우려와 만류 속에, 이윽고 설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설계는 결코 건축사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건축주가 바라고 요구하는 것을 건축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설계라면, 우리는 당연히 그 시간 내내 함께였다. 입이 아프게 이야기했던 집의 콘셉트와 위시리스트가 하나씩 도면에 반영될 때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희열감이 사이다처럼 톡톡 터졌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바를 공유하고 내용을 다듬어 대표 건축사 양 소장에게 건넸다. 그러면 양 소장이 그것을 바탕으로 1~2개의 안을 제안해 오고, 우리는 다시 모여 회의하고 통일된 안을 만들어 피드백했다. 건축주도, 건축사도 모두 ‘다수’인 상황.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 비누와 양 소장이 창구 역할을 맡았다.
한 지붕 네 집, 아파트 단지보다 어렵다
한 지붕 아래 서로 구조가 다른, 네 개의 개인 공간과 공유 공간을 설계한다는 건 아파트 단지 하나를 짓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었다. 아파트는 덩치만 클 뿐 단순한 반복이지만, 우리 집은 그야말로 ‘맞춤형 지뢰밭’이었다. 방, 주방, 거실, 화장실 등이 아파트처럼 같은 선에 놓이는 게 아니라 네 가구 모두 배치가 다 다르다. 특히 화장실은 면적, 형식, 위치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건축사들에게도 아마 최고 난도의 작업이었을 것이다. 남들은 속도 모르고 “아직도 설계 중이라고? 도면 좀 그리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했지만, 우리는 그 긴 시간을 ‘지루한 분주함’ 속에서 보냈다.
배우고, 알아보고, 더하고, 덜어내고
그때는 몰랐다. 설계의 시간은 곧 건축주가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야 하는 시간인 줄을. 기초 구조 이해에서부터 콘센트와 스위치 위치, 태양광 발전 시설과 열교환장치 까지,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끝이 없었다. 심지어 일부 시스템은 건축사사무소 측에서도 처음 접해보는 분야라 제품 선정부터 업체 섭외까지 우리가 직접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빛난 사람은 비누였다. 찬찬한 성격에 탐구심이 깊은 비누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졸속 선택했거나 아예 포기하고서 내내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최신 소재와 트렌드를 먼저 공부하고 정보를 정리해 알려주는 것도 비누였다. 같은 걸 검색해도 그가 가져오는 정보의 폭과 깊이는 달랐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더니 꼭 들어맞는 말이었다.
물론 나도 정보의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닥치는 대로 읽고 공부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욕심이 생겼다. 온 세계의 주택 건축 트렌드와 인테리어 정보를 접하는 사이 눈이 높아지다 못해 정수리에 올라붙은 느낌이었다. 상상은 달콤했고 내 주머니는 먼지처럼 가볍다는 게 비극이었다. 욕망에 눈이 멀어 이것저것 막 추가했다가 도로 빼기를 무한반복하던, 달콤 쌉싸름한 설계의 시간이었다.
제주에서 목구조 주택, 괜찮아?
우리 집은 높이 9미터, 일반목구조 2층 주택으로 설계됐다. 처음 목구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양 소장이 추천한 거니 괜찮겠지, 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제주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지인들은 걱정이 많았다.
“습기 많고 비 많이 오는 곳에서 목구조 괜찮은 거야?”
알고 보니, 목재로 마감한 게 아니라 목재로 구조를 짰을 뿐이라 외벽은 습기와 무관했고, 오히려 단열과 방수에는 더 유리한 구조였다. 특히 경량목구조는 벽체 내부에 단열재를 넣기 쉬워 철근 콘크리트보다 훨씬 따뜻하다. 우리는 여기에 더해 레인스크린까지 적용해 방수에 만전을 기했다.
목구조, 화재에 약하지 않아?
두 번째로 많이 받은 질문은 “목구조면 불 잘 붙지 않아?”였다. 나도 집짓기 전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중목구조는 오히려 화재와 지진에 강하단다. 우리 집은 경량목구조와 중목구조를 결합한 형태. 중목구조는 굵은 목재로 짜 맞춘 기둥과 보가 내력벽과 결합돼 강한 내진성능을 가진다. 일본에서 중목구조가 발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중목구조에 사용되는 ‘집성재’는 목재를 모아 만든 공학 목재로, 강도와 내화성이 뛰어나다. 단면이 두꺼울수록 불에 잘 안 타고, 타더라도 표면에 탄화층이 생겨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준단다. 즉 화재 발생 시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대피 시간을 충분히 벌어준다는 것이다. 물론 화재에 취약한 마감재를 쓸 경우 상황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요약하자면, 목구조가 무조건 불에 약하다는 건 편견이다.
구조가 인테리어가 된다
중목구조의 또 다른 매력은 구조가 곧 인테리어라는 점이다. 노출된 기둥과 보는 미적 요소가 되며, 구조적 제약이 적어 큰 창문과 현관을 만들 수 있다. 우리 집 창문이 1층, 2층 할 것 없이 어마어마하게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지금 와서는 살짝 후회 포인트다. 그렇게까지 클 필요가 있었나 싶은데, 설계도면만 보고는 감이 안 왔던 탓이다.
우리의 소원은 ‘삼무(三無)’
설계의 시간 동안, 우리의 최우선 관심사는 ‘삼무’였다. 외풍 없음, 습기 없음, 벌레 없음. 기계장치, 창호, 소모품까지 모든 선택 기준은 단열, 기밀, 방수, 방습, 환기 기능이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능 집착자’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우리가 간다!
설계의 마지막 난관은 시공사 선정이었다. 당시 제주에서 연면적 100평에 달하는 2층 목구조 주택을 시공한 경험이 있는 종합건설사는 없었다. 그래서 지인들을 통해 수소문한 끝에, 2층 목구조 경험은 없지만 ‘공부하면서 짓겠다’라고 나선 G건설사와 계약했다.
처음 집 짓는 건축주, 사무소 문을 열고 처음 설계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축사. 처음 2층 목구조를 시공하는 건설사. 이 셋이 모였으니 한편으로는 ‘대환장파티’가 우려됐지만, 우리 셋 다 첫 경험의 열정과 패기를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