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셰어'의 심장, 공유 주방

미로헌 탐구생활 - 공간이 바꾸는 관계의 풍경

by 조선희


미로헌에서 공유 주방은 단순한 기능을 넘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심장 같은 공간이다.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물건 중 가장 자잘하고 종류가 많은 게 바로 주방 살림이다. 수저부터 냄비 받침, 전기밥솥, 믹서기, 곰솥, 프라이팬 등등. 하루만 살아도 이만큼, 평생 살아도 이만큼. 결국 필요 총량은 비슷하다.


우리는 주방을 함께 쓴다. 각자 주방을 만들었더라면 모든 게 네 배. 싱크대도, 인덕션도, 식기건조대도 넷씩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살림 경력 도합 수십 년인 비누와 내가 가진 주방 살림만으로도 네 가구가 넉넉하게 쓰고도 남는다.


신기하게도 살림을 합칠 운명이었는지 비누와 나는 소유한 물건의 분야와 결이 꽤 다르다. 비누는 주방 도구 전문가 수준. 각종 믹서와 분쇄기를 시작으로 꼬막껍데기 까기까지 온갖 도구가 가득이다. 내게 풍성한 건 그릇이다.


비누는 요리의 효율과 편의를 생각하는 ‘도구형 인간(호모 파베르)’이고, 나는 도구나 기계와 철저히 내외하는 ‘기계치’이다. 채를 썰 때면 나는 간이숫돌에 칼부터 갈고 직접 채를 썬다. 기계는 멀고 손은 가깝다. 기계 작동 원리 따위 관심이 1도 없다. 늘 쓰는, 제법 절친한 기계들이 한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새로운 기계와는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젠 주방을 함께 쓰다 보니 내가 뭐라도 하나 망가뜨리면 민폐가 될까 조심스러워서도 더욱 그렇다. 그래도 비누가 사용법을 알려주며 도전해 보라고 바람을 넣어주는 덕에 예전보다 쓸 줄 아는 기기가 늘고 있다. 여전히 진땀을 흘리지만 말이다.


공유 주방의 진짜 매력은 바로 ‘공동 구매’의 힘이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낼 고가의 제품들을 함께 쓰는 기쁨! 대표적인 게 초음파 식기 세척기다. 마루가 찾아낸 이 장비는 그릇뿐 아니라 과일, 채소까지 안전하게 세척해 준다. 거창한 기계가 아니라 싱크볼 하부에 초음파 장치가 달려 있는 형태라 공간도 따로 차지하지 않는다. 깨끗하게 닦기 옹색한 텀블러와 커피머신 부품부터 씻기 까다로운 브로콜리까지 완벽하게 세척해 준다.


3미터를 훌쩍 넘는 아일랜드 작업대에 초음파세척기와 후드일체 인덕션이 감쪽같이 숨겨져 있다.


또 하나는 후드 일체형 3구 인덕션이다. 천정형 후드가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우리 주방에는 딱이다. 가격은 사악했지만, 다 같이 나누니 감당 오케이. 공유 주방이라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다들 감탄하는 찬장! 사실 우리도 처음엔 무난하게 상부장을 설치하려 했다. 그러다 이 찬장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보여주는 수납을 하자.” 유리 미서기문이 달린 찬장은 어릴 적 엄마의 부엌을 떠올려주었다. 내 고향 말로 ‘부샄(아궁이)’ 옆에 있던, 그 귀한 참기름 병이 들어 있던 찬장의 기억 말이다. 비누와 마루도 나의 감성에 동의했다. 이 찬장은 주방 설계의 기준이 되었다. 워낙 사이즈가 큰지라 찬장이 들어갈 만한 자리를 확보한 뒤에야 냉장고, 오븐장 등이 배치될 수 있었다.


천연 대리석 아일랜드 상판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유지 관리가 쉬워 오래 쓸 수 있다기에 고른 제품이다. 공유 주방이어서 좋은 제품에 투자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고 깨끗하게 관리 유지할 이유가 되어준 셈이다. 어쩌면 주방은,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를 매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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