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육십,
생판 남들과 살기로 했다

프롤로그 1

by 조선희


아침이면 나는 거실 창 블라인드를 걷는다.

남향으로 열린 큰 창으로 햇살이 스며드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사방이 집과 담으로 둘러싸인 중정 구조라 해가 남쪽으로 기울 때만 잠깐,

거실 바닥에 볕이 머문다. 나는 그 짧은 햇살을 애써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 찰나의 햇살이 바닥을 스르르 타고 흐를 때, 이 집의 아침은 특별해진다. 날이 흐려도,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블라인드는 꼭 걷는다. 날씨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일. 그게 좋다. 예전에는 몰랐던 감정이다.


직전까지 살던 집에서는 거실 커튼조차 제대로 걷을 수 없었다. 창밖이 곧장 주차장이었으니까. 간혹 아스라이 보이는 바다가 보고 싶어 살짝 걷었다가도 곧 내려야 했다. 늘 외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한다는 건 사소하지만, 작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지금 나는 내가 원하던 거의 모든 요소를 담아 지은 집에서 살고 있다. ‘생판 남’들과 함께. 이 집에서의 삶이 새롭고 각별한 까닭이다. 2022년 12월 마지막 날. 이 집에서의 첫 밤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시 암 투병 중이던 나는 서울의 요양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제주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남편 Y의 기일이었다. 저녁 무렵에서야 도착했고,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 제사상을 차릴 형편이 아니었다.


그날 내가 처음 한 일은, 동거인들이 차려준 따뜻한 밥을 함께 먹는 일이었다. 한 끼의 식사였지만,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 순간 ‘식구(食口)’가 되었다. 다섯 명의 생판 남남이, 새 집에서 처음 함께한 저녁. 소박했지만, 나에겐 뭉클한 입주 세리머니였다.


그로부터 어느덧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함께 사는 사람들도, 이 집도, 제법 ‘내 사람’, ‘내 공간’처럼 느껴진다. 이토록 편안하고 따뜻할 줄 몰랐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삶의 방식. 어떤 문제가 닥칠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덤덤했지만, 속으론 무수한 걱정과 부담이 있었다.


“봐라, 결국 못 살겠지?”

“가족끼리도 힘든데, 남하고 어떻게 살아?”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니까.”

이런 말들이 현실이 되는 순간, 내 선택은 실패로 낙인찍힐 터였다. 그게 무서워서라도, 정말 잘 살아보자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 문득 이질감은 사라지고, 불안이 잦아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비로소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싶은 평온이 찾아왔다. 마치 처음부터 이들과 이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 같은 이 기분이라니.


집 지을 때부터 우리끼리 자주 농담처럼 주고받던 말이 생각난 것도 이즘이었다.

“이거 누가 기록 좀 해야 하는 거 아냐?”

“생판 남남끼리 집을 짓고, 함께 살아간다는 이야기. 흔치 않잖아.”

“써니 언니가 딱인데?”


그때는 웃어넘겼다. 앞날도 모르는 마당에 뭘 적느냐 싶었다. ‘중간에 깨지지만 않으면 성공이지’ 하는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시시때때로 메모를 했다. 어쩌면, 언젠가는,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를 쓰게 되리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모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실 때 넌지시 물어보았다.

“우리, 이제 좀 괜찮지 않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쏟아졌다.

“확신은 없었는데, 어느 순간 잘 살고 있더라고요.”

“후회할 줄 알았는데, 만족해요.”

“우리가 크고 작은 일들을 꽤 잘 헤쳐왔다는 게, 스스로 많이 대견해요.”


함께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 갈등은 누구와 살아도 생긴다. ‘찐 혈육’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풀어가느냐다. 남이라서 어려운 게 아니라, 남이어서 오히려 나은 점도 많았다. 기대가 적으니 실망도 덜하고, 감정 소모도 줄었다. 처음엔 실망했던 일들을 이제는 ‘남이니 당연하지’ 하고 스르르 흘려보내는 유연함과 슬기로움이 생겨났다.


서로의 속도와 방식은 달랐지만, 그걸 애써 바꾸려 들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서로 조율하면서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게 우리의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함께 살아보면 보인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예민하고, 어디까지가 내 한계인지. 이런 것들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게 ‘남’이다.


혈연, 학연, 지연 그 어느 것 하나 없는 ‘무연고 우연 가족’이 함께 만들어낸 셰어라이프. 가족이라 하기엔 적당히 멀고, 셰어하우스라 하기엔 좀 더 깊은 사이. 공간과 물건뿐 아니라, 삶의 온기와 리듬, 갈등과 배려, 루틴까지 나누는 관계. 실제로 살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근사하다.


누구에게나 권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함께 잘 사는 건 가족끼리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백 살도 문제없는 시대, 이제는 삶의 방식도 새로워질 필요가 있다.


당신도 상상해 보라. 무연고 우연 가족과 함께 ‘즐거운 우리, 자유로운 나’,
이 둘을 동시에 지키는 셰어라이프를.
그래서 지금, 나는 이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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