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진'* 동거생활 - 지속가능한 관계의 기술
*요망지다 - ‘야무지고 당차다’라는 의미의 제주어. 제주섬 밖(육지) 사람들은 ‘요망지다'를
‘요망하다’로 알아듣고 무척 당황해하곤 한다. 하지만 제주섬에서 ‘요망지다’는 말은 찬사나 다름없다.
우리는 여전히 ‘회의주의자’들이다.
갈등이 생기면 일단 대화부터 시작하고, 문제가 생기면 우선 머리를 맞대본다. 입주 3년째를 맞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혹은 미로헌을 유지·관리하는 데 필요할 때마다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회의를 한다. 사안에 따라 속도는 다르다. 급하면 단체대화방에서 의견을 모으고, 여유가 있으면 월례회의에서 천천히 풀어낸다.
중요한 건 어떤 경우에도 ‘독단’은 없다는 점이다. 아주 급한 상황에서 몇몇이 우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더라도, “왜 그렇게 했는지”를 단체대화방에 투명하게 공유한다. 우리가 ‘모두의 의사결정’을 원칙으로 삼는 건, 집단지성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정보를 충분히 나누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만장일치를 우선으로 한다. 그래도 합의가 어려울 땐, 다수결로 넘어간다. 어떤 경우에도 ‘슬쩍’이나 ‘독단’은 금물이다. 공동체 생활에서의 결정은 다 함께 책임지는 일이니까.
물론 이 과정이 항상 매끄러운 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일명 ‘정수기 사건’이다. 미로헌 1층 주방에는 냉온수가 나오는 정수기가 있다. 공동자금으로 구입해 함께 사용 중이다. 2층에 사는 수와 루나는 좀 불편하겠다 싶었는데, 막상 가장 불편을 겪고 있었던 건 마루였다.
마루는 살롱에 웬만한 카페 수준의 장비를 갖춰 놓고도, 자주 1층에서 커피를 내리곤 했다. 알고 보니 이유는 물이었다. 살롱에서 커피를 내리려면 1층 주방에서 정수기 물을 받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던 것.
그러던 중, 마루가 서울 사무실에서 쓰던 정수기와 냉장고를 정리할 계획인데 제주로 가져오면 어떨지, 회의 안건으로 올렸다. 냉장고는 만장일치로 찬성. 그런데 정수기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마루는 그간의 불편함을 털어놓으며, 살롱에 정수기를 설치하고 싶다고 했다. 유지·관리비용은 본인이 부담하겠다고 했다.
나는 수와 루나가 당연히 불편했을 거라 생각해서 찬성 의견을 냈다. 그런데 의외로 두 사람 모두 불편함이 전혀 없단다. 오히려 “물 뜨러 내려가는 것도 재미”라며, 굳이 2층에 또 설치할 필요가 있겠냐는 반응이었다. 물론 반대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굳이?” 하는 정도의 미적지근한 동의랄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은 괜찮다고 해도, 막상 설치되면 결국 쓰게 되지 않겠어?”
있으면 당연히 쓰게 될 터이니 비용도 공금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마루의 개인 지출을 줄여주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다 같이 사용할 거라면 공금에서 부담하는 편이 합리적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아뇨, 안 쓸 거 같아요.”
약간의 설왕설래 끝에 정수기는 살롱에 들이기로 했고, 운송비부터 유지·관리비까지 마루가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수와 루나에게 얼마든지 같이 써도 된다고 덧붙였다.
나도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았다. 내가 더 나서면 이후 누군가 반대 의견 내는 걸 주저하게 될까 봐. 나이란 게 이럴 땐 괜히 무겁게 느껴진다. 가장 나이 많은 내가 더 이야기하면 그걸 압박처럼 느낄까 저어되는 것이다.
그러나 후유증은 남았다. 나는 생판 남들과 살면서 나름대로 세워둔 기준이 있다. 어떤 사안이든, 단 한 사람이라도 필요성을 느끼면 거기서부터 논의는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이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않더라도, 다수가 소수를 위해 기꺼이 배려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래도 이번엔 그냥 넘기기로 했다. 대신, 언젠가 비슷한 상황이 오면 꼭 얘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2층에 정수기가 있어서 너무 편하고 좋아요. 그땐 생각이 짧았어요. 사과드려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오케이. 그때 주절주절 얘기 안 하길 잘했구나.’ 싶었다.
이렇듯 우리에게 회의란 단순히 의사결정만을 위한 수단은 아니다. 서로 ‘다름’을 조율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익혀가는 훈련이다.
때로 귀찮고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성숙해지고 더 유연해진다. 회의의 진가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이제 우리는, ‘회의주의자’를 넘어, 진정한 ‘회의 덕후’로 진화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