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출은 늘었는데, 부담은 줄었다고?
그게 말이 돼?

'요망진'* 동거생활 -지속가능한 관계의 기술

by 조선희
요망지다 - '야무지고 당차다'라는 의미의 제주어. 제주섬 밖(육지) 사람들은 '요망지다'를 '요망하다'로 알아듣고 무척 당황해하곤 한다. 하지만 제주섬에서 '요망지다'라는 말은 찬사나 다름없다.


혼자 살 땐? 계산 없는 소비 관성

혼자 살 땐 살림살이가 단순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사고, 공과금이나 관리비가 오르면 그냥 오르나 보다 했다. 갑자기 지출할 일이 생기면 ‘뭐, 어쩔 수 없지’ 하며 쿨하게(=무신경하게) 넘겼다. 대체로 계산이라곤 할 줄 모르는, 관성적이고 무심한 소비 태도였다. 전기요금이 갑자기 늘어나도 ‘어이쿠, 많이 나왔네.' 하고 마는 식. 원인을 따지거나 대책을 세워본 적이 없다. ‘나 혼잔데. 쓰면 얼마나 쓰겠어? 내가 쓰는 건 정해져 있는데 굳이 따지기까지야.’ 이런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꽤 오랫동안, 소비 개념 없이, 흐릿한 경제관념으로 살았다.


지출은 늘었는데, 부담은 줄어드는 매직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집도 크고, 식구도 많으니까 당연히 혼자 살 때보다 돈이 더 많이 들지 않아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미로헌의 총지출액은 일반 한 가구 주택보다야 당연히 크다. 하지만 네 가구가 나눠 부담하니 실제로는 큰 차이가 없다. 같이 살면서 개인의 씀씀이가 갑자기 커지지 않는 한, 혼자 살 때와 비교해 크게 늘어난 건 없다.


우리는 난방비, 전기 요금, 상하수도 요금, 인터넷 요금, 주택화재 보험료, 방역비, 공동 물품 구매 비용 등 모든 공동 지출 항목을 사전에 합의한 지분율에 따라 나눈다. 대부분은 혼자 살 때도 소비하던 필수 항목들이다. 새로 추가된 건 주택 화재보험료 정도고, 인터넷은 마루가 부담해 우리는 공짜로 쓰고 있다. 공동으로 쓰는 소모품 구매 항목도 비슷하다. 세제, 키친타월, 종량제 봉투, 페인트와 같은 간단한 수리 자재 같은 건 혼자 살아도 쓰는 것들이니 부담이 늘어난 건 아니다.


특히 전기요금은 눈에 띄게 줄었다. 태양광 발전 시설 덕분이다. 각자 필요한 전기용품을 사용하고, 여름철 에어컨도 아낌없이 켜지만 혼자 살 때보다 적게 부담하고 있다. 대형 가전제품은 입주할 때 같이 샀고, 각자 갖고 온 소형 가전은 공유한다. 예를 들어 에어 프라이어는 공동구매했고, 두유 제조기는 비누가 샀지만 누구든 필요한 사람은 쓸 수 있다. 필요하면 공동 부담하거나, 누군가 먼저 사서 같이 쓰는 방식이다.


또 하나, 같이 살면서 확실히 줄어든 게 있다. 일명 ‘홧김 비용’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들지 않았을 비용 말이다. 미로헌에선 누군가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면, 그걸 기회 삼아 회식을 연다. 전원이든, 일부 인원이든 함께 앉아 일단 먹으면서 푼다. 비용은 참여 인원이 나누어 낸다. 그렇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았던 사람은 어느새 안정을 되찾는다. 혼자 살 때는 어렵사리 사람들과 시간 맞춰야 하고, 아쉬운 내가 비용 들여 일부러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이제, 우리에겐, 언제든지 함께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줄 항시 대기조가 있다. 게다가 미로헌의 기본 원칙이 'n분의 1' 아니던가. 비용은 덜고, 위로받으면서 화가 확 풀리니, 삶의 질이 높아지는 기분이다.


경비절감 ‘효자 품목’에 투자하기

예상치 못한 지출도 가끔 생긴다. 그럴 땐 우선 ‘정말 필요한가?’를 따진다. 대체 가능성은 없는지도 열심히 검토한다. 필요성이 확인되면 공동물품 구매 담당자인 비누 중심으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최근엔 ‘틀비계’를 샀다. 맞다, 그 건설현장에서 쓰는 비계, 다들 아시바라고 부르는.


“가정집에서 웬 비계냐?” 하겠지만, 우리 집은 천장이 높아 실링팬 수리나 전등 교체가 일반 사다리로는 어렵다. 실제로 살롱의 실링팬이 고장 나서 수리 견적을 내보니, 비계가 필요한 작업이라며 비용이 말도 안 되게 비쌌다.


한 번 부를 비용이면 비계를 사는 게 나았다. 직접 가지고 있으면 출장비만 부담하면 되니까, 3분의 1 가격에 해결 가능했다. 우리가 직접 대문 위 높은 곳에 오일 스테인 바를 때도 더 안전하고 유용할 것이다. 비계든 실링팬이든, 그런 지출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환경을 만드는 투자나 다름없다.


우리는 월 단위 생활비 기준액을 정해 각 가구의 지분율에 따라 갹출하고, 거기서 모든 공동 지출을 처리한다. 남는 돈은 적립해서 고가의 물품 구입이나 집 보수 등에 대비한다. 누군가가 공동물품을 대신 구매하면 재정 담당 마루가 지체 없이 환급한다. 단, 회식비만은 예외다. 공동 부담이긴 해도, 인원수 기준으로 각자 그때그때 갹출한다.


이런 디테일, 중요하다.
사소한 지출에서도 불균형이나 불공정이 없도록 하는 것.
그게 공동체 살림의 기본이다.


공유와 호혜로 만들어가는 미로헌 경제 생태계

살림을 분담하면 보이지 않는 비용의 절감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청소나 정원 손질, 쓰레기 분리배출, 오일 스테인 칠 작업 등은 직접 한다. 외부 용역을 부르면 당연히 돈이 들 테니까. 함께하는 노동은, 곧 돈을 아끼는 일이고, 공동체 노동의 가치를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공동서가의 책을 같이 돌려 읽고, 당장 안 쓰는 모니터를 필요한 식구에게 빌려 주고, 물물교환하는 일들, 이 모두가 공유이고, 호혜이고, 경제성이다. 각자의 경제관을 존중하면서도, ‘공유’에 대한 합의와 실천이 쌓여 만들어진 미로헌만의 경제 생태계다.


그리고 그건 돈만 아끼는 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태도를 나누고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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