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진'* 동거생활 - 지속가능한 동거의 기술
*요망지다 - '야무지고 당차다'라는 의미의 제주어/ 제주섬 밖(육지) 사람들은 '요망지다'를 '요망하다'로 알아듣고 무턱 당황해하곤 한다. 하지만 제주섬에서 '요망지다'는 말은 찬사나 다름없다.
“내가 알던 사람 맞아?”
비누와 내가 종종 주고받는 말이다. 재미있는 건, 우리 둘이 말하는 ‘알던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내가 수와 루나를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미로헌 설계 단계였으므로 두 사람에 대해서는 비교할 과거가 없다. 그래서 내가 저 말을 농담처럼 꺼낼 때, 대상은 주로 비누다.
반면, 우리 관계의 시작점이자 교집합인 비누는 이야기가 다르다. 마루와는 부부로 30년, 나와는 40년, 수나 루나와도 20년 넘는 인연을 이어왔으니, 네 사람의 과거를 소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자연히 비누가 이 말을 가장 자주 할 수밖에 없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해도, 한 지붕 아래 살아보면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낯선 면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리 친해도, 함께 살아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함께 살아봐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3년을 함께 살았다고 서로를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건, 시간의 양보다 감각에 가깝고, 경험의 총량보다도 어떤 순간의 인상에 더 좌우되는 것 같다.
한동안 비누를 가장 놀라게 한 인물은 루나였다. 시작은 피드백 속도의 문제였다. 집을 짓기로 결정한 이후로 의논할 일이 많았고, 빨리 결정해야 할 사안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기인 데다 서울과 제주에 흩어져 있었기에 대부분 소통 창구는 단체대화방이나 화상회의였다.
그런데 당시 루나의 피드백 속도가 너무 느렸다. 처음엔 직장 일이 바쁜가 보다 이해했지만, 하루가 지나도 단체대화방에 안 나타나기도 하고 회의에 들어와도 의견을 내는 일이 드물었다. 대체로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말이었고, 공동의 문제는 물론, 자기 공간에 대한 의견도 명확히 밝히는 법이 없었다.
논의 결과를 정리해서 양 소장에게 전달해야 하는 비누는 속이 타들어갔다. 몇 번은 직접 전화해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조금 더 빠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 요청했다. 그런데도 한동안 루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비누 입에서 터져 나온 말,
“내가 알던 루나 맞냐?”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비누는 루나를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했다. 의사 표현 분명하고, 꼼꼼하고, 무엇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그게 비누가 알던 루나였다. 게다가 루나는 비누를 무척 따랐다. 농담처럼, 비누에게 자신을 ‘수양딸 삼아 달라’고 할 만큼 애정이 깊었다. 그래서 비누로서는 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던 것이다.
몇 번의 지적 끝에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루나의 해명은 이랬다. 주택 건축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관심도 없어서 딱히 낼 의견이 없다는 것. 우리가 열띤 토론을 벌일 때도, 대부분 생소한 내용이라 도무지 끼어들 수가 없었다는 것. 매번 물어보기도 미안하고, 흐름을 끊을까 봐 그냥 조용히 듣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의견보다 현장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비누가 지적한 지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모르면 더 자주 물어보고, 스스로 찾아보고, 관심 없었어도 이젠 내 일이니 더더욱 배워야 한다는 것. 같이 살기로 했어도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있고, 그럴 수 없는 게 있다는 것.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고 모를수록 더 열심히 묻고, 더 진심으로 들여다보라고 조언했다.
비누는 결국 루나에게서 발견한 ‘낯섦’이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판단했다. 좋고 나쁨이나 진심 여부를 넘어서 말이다. 물론, 이해하려 들면 이해할 여지는 있었다.
그즈음 루나는 서울 직장생활에 지친 것 같았다(거의 번아웃 분위기였다). 외부 회의나 출장이 잦았고, 퇴근이 늦은 날도 많았다. 하루 일과를 소화하기도 벅찬 상황에,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는 무척 버거웠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고비를 다 넘긴 다음 비누가 말했다.
“루나야, 그땐 정말 너랑 살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했었어.”
비누의 속내를 다 알게 된 루나는 반론 없이 씩 웃을 뿐. 말하지 않아도 루나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전해졌다.
루나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한때 비누에게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던 적이 있다. 내가 기계와는 전혀 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비누의 반응이 그랬다. 동거 초기, 내가 만지면 인덕션이 갑자기 ‘얼음땡’이 되는가 하면 멀쩡하던 현관문이 갑자기 안 열리는 식이었다. 일명 ‘똥손’의 저주. 그럴 때마다 척척 문제를 해결하는 건 비누의 ‘금손’이었다. 오죽하면 비누는 “내가 알던 써니 맞아?”를 넘어서 “혹시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닐까?” 싶었다고 한다.
진짜 웃긴 건, 비누가 의외로 깜빡깜빡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비누 말로는 원래부터 기억력이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그 말을 선뜻 믿기 어려웠다. 비누는 뭘 잊어버리거나 놓치는 일 따위는 없을 사람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 같이 이야기한 것도 비누 혼자 기억을 못 하는 일이 가끔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내가 알던 비누 맞아?”
루나의 한 마디 ~ 이 글을 읽어보니, 그때 내가 정말 답답하게 보였겠다. 특히 나를 잘 안다고 여기던 비누 언니는 얼마나 답답했을지... 변명 같지만, 당시 논의거리들을 내가 일부러 외면했거나, 관심을 안 가지려고 했던 건 아니야. 단지 눈앞의 일, 딱 한 가지에만 푹 빠지는 내 성향 탓이야. 늘 ‘지금’에만 사는 사람이라서 오로지 바로 눈앞의 상황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버리는 식이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내가 몰두했던 건 집 짓기가 아니라 회사 일이었거든. 그러니 집 짓기에 들여야 할 에너지는 거의 바닥이었어. 돌이켜보니 정말 많이 미안해. 그리고 이렇게, 내 성향이 이래서 그랬노라고 변명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걸 알아. 지금은 고쳐보려고 노력 중이야. 금방 개선할 자신은 없지만 미로허니들이 너른 마음으로 루나를 품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