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헌 손님은 사이렌을 울린다

'요망진'* 동거생활 - 지속가능한 관계의 기술

by 조선희
*요망지다 - '야무지고 당차다'라는 의미의 제주어. 제주섬 밖(육지) 사람들은 '요망지다'를 '요망하다'로 알아듣고 당황해하곤 한다. 하지만 제주섬에서 '요망지다'는 말은 찬사나 다름없다.


미로헌에서 손님이 가장 많은 사람은 단연 나, 써니다. 제주에 터를 잡은 지 벌써 25년째. 제주살이 3~4년 차인 다른 식구들과는 ‘손님 내공’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오다가다 들러 차를 마시고 가는 사람도 많고, 회의 비슷한 모임을 열 때도 있다.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들도 가끔씩 내려와 머물다 간다.


하지만 진짜 손님은 따로 있다. 바로 내 아이들이다. 아직 미혼인 큰아이와, 결혼한 작은아이 부부. 1년에 서너 번 정도 오는 수준이지만, 이들이 와야 집이 비로소 ‘가득 찬’ 느낌이 든다. 작은아이 부부는 2층 방을 쓴다. 1인용 침대 두 개라 따로 자야 하긴 하지만 말이다.


큰아이는 1층 내 방에서 함께 지낸다. 살롱 다락에도 잘 만한 공간이 있지만, 밤늦게까지 수다 떨며 노닥거리는 재미를 놓칠 수 없으니까. 물론 이건 결혼 전까지의 이야기다. 큰아이까지 결혼을 하고 두 쌍이 동시에 내려올 일이 생긴다면, 나는 아이들을 집에서 재우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날이 오면 호텔에서 묵으라고, 미리 말해두었다. 그땐 아이들은 정말 ‘손님’이 될 테니까.


다른 식구들에게도 ‘고정 게스트’가 있다. 마루의 동생 가족, 수의 조카, 루나의 형제들. 고정이라고 해서 자주 온다는 뜻은 아니다. 언제 와도 이상하지 않고, 낯설지 않다는 의미에서의 ‘고정’이다. 몇 차례 만나본 마루의 동생 가족은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확장된 식구의 느낌이랄까.


지인들은 우리의 손님맞이에 대해 가끔 묻는다. 한 지붕 아래 살다 보니 개인적인 손님맞이도 공동의 일로 여겨지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하지만 미로헌의 원칙은 간단하다. 누구의 손님이든, ‘모두의 일’이 되지 않도록 할 것. 손님이 온다고 해서 모두가 시간을 낼 필요도 없고, 전 구성원이 나설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경우, 요청이 있을 때만 기꺼이 곁을 내어주면 된다.


물론 친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온다면 분위기는 조금 달라진다. 함께 외식하거나, 집밥을 나눠 먹기도 한다. 그럴 땐 주방이 북적이고 살롱은 작은 파티장 같은 분위기가 된다. 밥 냄새, 말소리, 웃음소리가 층층이 퍼지는 날이면, 이 집이 ‘우리 모두의 집’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미로헌에는 겹치는 인연들도 제법 있다. 비누와 마루의 넓은 인간관계 덕분에 우리 모두의 인연이 된 지인들도 적지 않다. 다 같이 아는 지인이 방문하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회식 분위기가 되기도 하고, 제주 ‘핫플’을 안내하기도 한다. 도민은 굳이 갈 일이 없는 카페나 관광지를 같이 돌아다니며 ‘관광객 코스프레’를 즐기는 날도 있다.


손님 일정은 일정 공유 어플과 단체대화방을 통해 공유한다. 언제, 누구 손님이 오는지, 몇 시쯤 도착하는지, 머무는 시간(기간)과 특이사항 등을 미리 알려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내 아이들의 방을 손님용으로 쓰는지의 여부다. 각자의 공간에 손님을 재우기 어려운 경우, 나에게 사전에 알리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내 아이들의 방을 쓰도록 한다. 침구가 필요할 때는 내가 직접 적절한 것으로 준비해 준다. 손님이 떠난 뒤 호스트가 침구 세탁과 정리, 방과 공용 욕실 청소를 책임지는 것이 미로헌의 불문율이다.


그리고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손님 응대 매뉴얼이다.

• 미로헌의 구조와 동선을 미리 소개한다.
• 동거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주의사항을 손님에게 안내한다.
• 손님을 혼자 집에 두어 어색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 경비 시스템과 경보 가능 상황을 반드시 설명한다.


이 매뉴얼은 실제 사고(!) 경험에서 비롯됐다. 한 번은 내 지인이 머물던 날 이른 아침 난데없이 경보 사이렌이 울린 적이 있었다. 일찍 잠에서 깬 지인이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서려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사이렌이 울려 퍼진 것. 또 다른 지인은 밤에 도착해 집 구경을 제대로 못 했던 게 아쉬워 이튿날 새벽 전망대에 오르려다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말았다. 두 건 모두 내가 미리 경보 시스템을 알려주지 못한 불찰에서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손님은 놀라고, 나는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가 이 매뉴얼을 지키는 건, 서로 안전하고 편안하기 위해서다. 미리 일러주지 않아 생긴 불상사에 손님이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건 누구에게나 곤혹스러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손님이 온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확 늘어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은근히, 티 나지 않게 마음을 써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집을 함께 쓰는 식구로서의 적당한 거리 두기, 그리고 사려 깊은 배려. 그 균형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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