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격렬하게, 결론은 깔끔하게

'요망진'* 동거생활 - 지속가능한 관계의 기술

by 조선희
*요망지다 - ‘야무지고 당차다’라는 의미의 제주어. 제주섬 밖(육지) 사람들은 ‘요망지다‘를
‘요망하다’로 알아듣고 무척 당황해하곤 한다. 하지만 제주섬에서 ‘요망지다’는 말은 찬사나 다름없다.


세부 원칙을 세우고 합리적으로 운영한다 해도, 사람 사이의 일이다 보니 가끔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다행히 우리 가운데 그럴 때마다 문제를 부풀리거나, 자기 입장만 고집하는 사람은 없다. 말할 기회를 충분히 주고,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고, 이견에 대해 반론하며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새 이해와 설득에 이르게 된다. 그럴 때면 묘한 쾌감과 더불어 ‘그래, 이러니까 우리가 같이 살 수 있지’라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우리’라는 감각이 다시 확인되는 순간이다.


미로헌이 준공된 지 딱 1년이 지나 제주 이직에 성공한 루나가 합류하면서, 비로소 다섯 명 완전체가 됐다. 그전까지 루나는 한 달에 한두 번 주말에만 내려오는 ‘반쯤 손님’ 같은 상태였다. 완전체가 되자 월례회의도 더는 비대면으로 할 필요가 없어졌고, 수가 2층 청소를 혼자 도맡을 필요도 없어졌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던 어느 월례회의 때, 문제가 불거졌다. 주제는 음식물 쓰레기, 일명 ‘음쓰’ 처리 방식.


처음 문제를 제기한 건 수였다. 동선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차고에 차를 세우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음쓰와 ‘음쓰카드’(제주의 충전식 종량제 카드)를 챙긴 뒤 다시 대문을 열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과정이 번거롭다는 이야기였다. 거의 매일 늦은 밤에 귀가하는 수로서는 충분히 불편할 만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음쓰는 대문 바로 앞에 내놓기로 하고, 현관에 비치하던 음쓰카드는 차고 재활용 분리함 위로 옮기기로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가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단순한 동선 정리로 문제가 정리되는 듯했지만, 그때 수가 조심스럽게 새로운 제안을 꺼냈다. 음쓰 당번을 다른 쓰레기 당번과 분리해 운영하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설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약간 머뭇거리는 분위기였다. 뭔가 불편한 얘기를 꺼내려는 눈치였다.


역시나,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음쓰를 처리해야 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배출자 처리 원칙’. 음쓰를 만든 사람이 책임지고 처리하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일견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수와 루나는 거의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 미로헌의 음쓰는 대부분 비누와 내가 만든다. 수나 루나가 음쓰를 버릴 때마다 "내가 만든 쓰레기도 아닌데 왜 치워야 하지?"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로부터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결론은 이렇게 났다.

쓰레기를 만든 사람이 치우자는, 사용자(배출자) 처리 원칙의 논리라면 음쓰뿐 아니라 미로헌 생활 전체에 적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차고를 주로 사용하는 마루와 수만 차고 건축비를 낸 것이 아니다. 주로 밖에 차를 세우는 써니와 루나도 함께 부담했다. 루나는 공유 주방을 거의 쓰지 않지만 주방 설비와 운영에 드는 비용을 공동 부담했다. 이렇듯 미로헌 건축 당시부터 개인 사정에 따른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공동생활 규칙을 만들지 않았다.
개인 행위 여부가 분담 시스템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각자의 쓰레기를 따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쓰레기를 대신 처리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셰어라이프의 기본 원리다.-따라서 음쓰 당번은 별도로 분리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능한 사람이 대신하자.


“그렇게까지 해야 해?”, “너무 피곤하지 않아?”라고 고개를 내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격렬하게 토론을 벌이는 건 정말 피곤하다. 하지만 회피해서는 안 된다.


피곤은 짧고, 불합리는 길다.
충분히 말하고, 귀 기울이고, 치열하게 토론할 때
비로소 선명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번,
함께 살 수 있는 이유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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