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어른생활 -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아침에 마주치면 인사는 한다. 하지만 그 이상 세세한 건 생략한다.
한 집에 있어도, 각자의 방에서 따로 식사하는 날이 많다. 비누와 나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만, 서로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각자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에 몰두한 채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다.
같이 산다고 해서 매사 함께할 수도 없고, 그건 우리 모두가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는 대체로 혼자 잘 놀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조합이다. 가까이 있다고 상대에게 치대거나, 일상을 전부 공유하려 들지 않는다. 독립심이 강하다고 할까. 아마 이런 기질 덕분에 우리는 한 집에 사는 식구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누와 마루 부부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익숙하다 못해 혼자가 아니면 불편한 1인 가구들이다. 사회생활에선 자연스럽게 선을 긋고, 내 시간과 공간을 지키는 걸 중요하게 여겨왔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생판 남들과 함께 살며 새롭게 고민하는 건 그 ‘선’을 어디에, 어떻게 그을 것인가이다.
동거 초기엔 더 조심스러웠다. 말을 너무 안 하면 서운해할까 걱정되고, 말을 너무 많이 하면 부담이 될까 싶었다. 일일이 챙겨주자니 간섭처럼 보일까 망설여지고, 안 챙기면 무심해 보일까 마음이 쓰였다.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함께 사는 데엔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거리를 두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가까워도 불편하지 않은 거리’를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말이다.
이건 한 사람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함께 사는 모두가 연습해야 한다. ‘이건 당연하지!’라고 여겼던 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고, 서로의 방식과 리듬을 다시 익히는 것. 그게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태도였다. 물론 지금도 서툴고 민망한 순간은 있다. 무심코 던진 말이 엉뚱하게 전달되거나, 뜻하지 않게 지나친 간섭처럼 들릴까 마음 졸일 때도 있다. 그럴 땐 속으로 되뇐다. ‘지금 이건 거리 조절 실패다.’ 그렇게 스스로 점검하며, 관계의 기술을 조금씩 다듬는다.
수의 이사는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미로헌 입주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서울 집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있던 짐이 내려오던 날, 짐은 미로헌과 시내 사무실 두 곳으로 나뉘어 옮겨져야 했고, 미로헌에 있던 짐 일부를 다시 사무실로 옮겨야 하는 고난도의 이사였다.
비누는 이삿날 훨씬 전, 수에게 조언했다. 책상 같은 건 미리 해체해서 포장을 해두는 게 좋다고. 원형 그대로는 실내 계단이나 외부의 원형 계단으로는 도저히 옮기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수는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이삿날, 책상은 거의 그대로였다. 결국 마루가 급하게 해체에 나섰고, 이사 진행이 좀 꼬일 수밖에 없었다.
비누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분명 수가 그러마고 했는데, 대답뿐이었나 싶은 거였다. 딱 필요한 조언을 했던 비누로서는, 수의 행동이 의아하고 납득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수가 비누의 조언대로 미리 준비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들이 몇 번 더 이어지자, 비누는 꽤 속상해했다. 탈 없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언했던 건데, 수는 똑같은 무게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속상한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한 비누가 수에게 말했다.
“내가 걱정돼서 하는 조언들이 네겐 부담스러울 수 있겠구나 싶어. 앞으로는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면 조언은 하지 않을게.”
수가 해명했다.
“언니 조언을 무시한 건 아니었어요. 늘 바쁘게 지내다 보니 미리 계획하기보다는 문제가 생기면 닥쳐서 해결했던 것 같아요.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건 맞아요.”
이럴 땐, 굳이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그때 새삼 미로헌의 또 하나의 원칙을 확인했다. ‘거리는 적당히, 마음은 가까이’. 함께 산다는 건 단지 ‘동거’가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는 생활’이다. 생판 남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에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드는 기본 조건이다.
나는 그 거리를 지키는 데 가장 유효한 것은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관계는 금세 삐걱대기 마련이다. 외식하면 자연스레 더치페이를 하거나, 누가 밥을 사면 내가 커피를 사고, 자주 빌리기만 했다면 언젠가 왕창 갚는 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호의가 희생이 되지 않도록, 그 거리를 세심하게 지키는 일. 함께 살수록, 거리를 재는 그 눈금은 더 정밀해져야 한다. 더 가까이 다가가려면 이런 섬세한 장치는 필수다. 살아보니 알겠다. 타인과의 동거란, 너무 가까우면 불편하고, 너무 멀어지면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나무의 뿌리는 하나라도, 그 가지는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 뻗는다. 햇살을 함께 받고, 바람을 함께 견디면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란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