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면 똥 되는 것들

슬기로운 어른생활 -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by 조선희

“어, 미안!”

“고마워.”

이 말 한마디면 될 것을, 괜히 머뭇거릴 때가 있다. 말은 삼켰어도 감정은 남는다. 마음속에서 맴돌던 그 작은 감정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날 이상한 타이밍에, 이상한 방식으로 터져 나온다. 마치 오래 막혀 있던 하수구가 터지듯이.


사람들은 늘 “아껴라, 절약하라” 말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것들 중에는 아끼면 안 되는 게 있다. 그중 하나가 ‘고맙다’, ‘미안하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수고했다, 잘했어, 이해해~ 이런 마음의 표현은 제때 꺼내 써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거름이 된다. 아끼고 미루다가 골든타임을 놓치면 결국 ‘똥’이 되고 만다.


인생도, 병도 결국은 타이밍이다. 큰 병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암이란 놈도, 제때 발견하고 제때 손 쓰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때를 놓치면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일.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타이밍을 알아채는 감각이다. ‘지금이다’ 싶은 딱 그 순간을 놓쳐버리면, 아무리 애써도 맞춤한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언젠가 주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로 저녁을 준비하던 중 비누가 내게 무언가 말을 건넸다. 나는 식재료를 다듬느라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그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저녁상을 차려 내 방에 와서 먹는데, 문득 조금 전의 장면이 마음에 걸렸다. 예전 일이 떠올랐다. 오래전, 비누가 나를 보러 제주에 오면 나는 너무 바빠서, 정작 마주 앉아 이야기할 틈이 없었다. 언젠가 비누가 했던 말, “제주에 올 때마다 언니 등에다 대고 이야기하다 왔어.” 그 말이 내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다신 ‘노룩 no look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숟가락을 놓고 바로 비누에게 갔다.

“아까 내가 눈길도 안 주고 대답한 거, 미안해.”

비누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응? 무슨 말이야?”

“눈을 마주치면서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아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난 아무 생각 없었어.”


말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마음에 담아 두지 않고 당장 사과하길 정말 잘했다. 가족끼리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생판 남이기 때문에 ‘말의 타이밍’이 훨씬 더 중요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아껴버리면 상대방은 ‘그럼 그렇지, 생판 남이 오죽하겠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적당한 거리 두기에 유효했던, ‘남이니까’라는 말이, 서로를 소홀하게 여겨도 되는 타당한 이유나 되는 것처럼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아끼면 ‘똥’되는 게 말뿐이랴. 마음도, 시간도, 물건도 마찬가지다. 일에 치여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수에게, “지금 김밥 싸는데 같이 먹을래?” 피곤에 절어 들어온 루나에게, “샐러드 만들 건데 나눠 먹을까?”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내 냉장고에서 재료를 조금 더 꺼내고, 손품을 조금 더 팔면 된다. 마음이 동할 때, 망설이지 않고 먼저 손을 내미는 일. 이건, 절대 아껴서는 안 되는 종류의 것이다.


사실,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보통 둘 중 하나다. 귀찮아서. 혹은 상처받기 싫어서. 골든타임을 놓친 후엔 더더욱 귀찮아지고, 뒤늦게 꺼낸 마음이 거절당할까 봐 결국 말하지 않게 된다. 관계에서 중요한 건 ‘감정의 타이밍’이다. 그 순간 털어버려야 할 감정은 그때, 아낌없이 써야 한다. ‘아끼면 똥 된다’는 말, 살림살이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더니 공동체 삶에선 더더욱 그렇다.


말도, 마음도, 물건도, 시간도 나눌수록 관계는 깊어진다. 생판 남들과 같이 산다는 건 사소한 말 한마디에 민감해지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IMG_3499.JPG



무연고우연가족_아우트로2.jpg


이전 11화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리? 우린 남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