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헌 탐구생활 - 공간이 바꾸는 관계의 풍경
생판 남들과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을 때, 속으로 단단히 다짐한 게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엄마 집에 오는 걸 절대 불편하게 만들지 말자. 내가 선택한 이 삶의 방식이 아이들에게 불편을 끼치거나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 이 집은 아이들에게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맘껏 게을러도 되는, ‘엄마가 항상 기다리는 우리 집’이어야 했다.
그래서 설계상의 제약과 예산 압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 방을 사수했다. 비록 면적이 좁아 더블베드를 들이진 못 했지만. 대신 전망 좋은 창을 품은 윈도 시트를 만들어 침대처럼 활용할 수 있게 하고, 그 위로는 다락을 얹었다. 다행히 천고가 높아 다락에서 남자 어른이 서도 될 정도여서 전혀 옹색하지 않다. 한 명은 아래, 한 명은 위―둘 다 아들이니 서로 간섭받지 않고 각자 자기 공간에서 잘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
그러나 작은 아이가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 상황이 조금 난감해졌다. 아들 부부가 함께 왔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위아래로 나뉘어 따로 자야 하니까. 나는 애교 섞인 농담으로 부탁하곤 한다.
“엄마 집에 오면, 잠시 떨어져 다오~.”
아이들 방에서는 서쪽 공원이 바라다 보인다. 2미터가 훌쩍 넘는 세로창을 통해 계절마다 바뀌는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다락에 누워서도 창밖이 훤히 보이도록 배치한 덕분이다. 바닥 면적은 좁지만, 5미터 가까운 천고와 경사지붕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난 덕에 이 방에는 오묘한 고요함이 감돈다.
비누 말로는 유럽 수도원 다락방 분위기라나. 조용하고 아늑하면서도 고립되지 않은 느낌. 나도 이 방에서 자보았다. 한 번은 윈도 시트에서, 또 한 번은 다락의 매트리스에서. 두 번 다 좋았다. 아침에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천천히 눈을 뜨는 그 기분, 몸도 마음도 가볍고 상쾌했다.
얼마 전에는 다락 밑 이불장 위에 아이들 어릴 적 사진들을 올려두었다. 작은 책꽂이도 하나 들여 내가 애지중지 아끼는 책 몇 권을 꽂아 두었다. 가끔 한가한 낮에 아이들 방 다락에 누워서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이 이 방에서 머무는 날은 고작 1년에 며칠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미로헌에는 별도의 게스트 룸이 없다. 우리 다섯 명이 살기에도 빠듯한 면적이고, 나를 제외한 미로허니들은 손님을 집에 재워준 경험이 거의 없어 게스트 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살이가 어디 그런가. 게다가 여기는 제주다. 가장 가깝고도 먼 땅. 누군가는 한 번쯤 오게 마련인 곳. 제주에 집을 짓고 산다고 하면, 가족이나 친한 지인이라면 찾아오고 싶어 할 것이 뻔하다. 분명히 필요해 보이는 게스트 룸, 그러나 설계상 불가능했다.
어쩌겠는가. 필요하다면 아이들 방을 내주겠다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내게는 아이들 말고도 가끔 머물다 갈 게스트가 적지 않으니 일정만 서로 겹치지 않게 이용하도록 했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다지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던 미로허니들에게도 게스트가 오기 시작한 것. 물론 이불과 베개도 내 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다만, 손님을 맞는 호스트가 지켜야 할 원칙도 분명하다. 방 청소, 이불 정리, 손님을 맞기 전과 떠난 후의 청소를 책임지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 방은 자연스럽게 ‘공유 공간’의 일부가 되었다. 비어 있는 시간 동안 누군가와 기꺼이 나눌 수 있다면, 그 또한 셰어라이프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소중하다고 해서 꼭 움켜쥐고 있을 필요는 없다.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그 소중함이 더욱 커지기도 하는 법이다.
나눌 수 있는 건 물건이든 공간이든 마음이든
너나들이로 스스럼없이 나누는 거다.
피붙이라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생판 남이기에 이런 나눔은 감사의 마음을 주고받을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