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헌 탐구생활 - 공간이 바꾸는 관계의 풍경
미로헌의 공동 서가에 대해 쓰기에 앞서 개인적인 책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내게 책은 사랑스럽지만 버거운 존재였던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모은 책은 결혼과 함께 신혼집으로 옮겨졌고, 이후 수차례 이사 때마다 가장 중요한 자산이면서도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결혼 후에는 두 사람 책이 합쳐졌으니, 부피와 무게는 말해 무엇하랴. 책을 버린다는 건 감히 상상도 못 했다. 우리 부부는 오갈 데 없는 책상물림인지라 사람은 한 방에 몰아 살아도 책은 아무 데나 쌓아둘 수 없다고 여겼다. 방 두 개짜리 전셋집을 전전하면서도 말이다.
이사 때가 되면 가장 먼저 책 포장을 서둘렀다. 포장이사라도 작업자들이 하는 대로 그냥 옮겼다간 되레 일만 늘어났다. 한때 문학도였던 나의 문학 서적, 한국 철학을 전공한 Y의 책, 아이들 책까지 합쳐지니, 해가 갈수록 그 무게를 감당하기가 버거워졌다.
결혼 10년 만에 과천에 첫 집을 마련했을 때, 안방을 과감히 가족 서재로 만들었다. 여러 개 책상들을 들여놓고, 방 사면에 서가를 짜 넣었다. 한 뼘 벽도 보이지 않게. 그렇다고 책이 짐만 되었던 건 물론 아니다. 한동안 나는 사람보다 책에서 더 위안과 지식과 감동을 얻는 것에 익숙했다. Y나 나나 책이 있어야 마음이 안정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책과 함께 살기를 20년. Y를 떠나보내고 아이들마저 서울로 올라간 뒤 나는 그야말로 제주에 갇힌 또 하나의 고립된 섬이 되었다. 딱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용기나 의지도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루하루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러다가 후배가 권한 숲 속 오두막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방 하나에 싱크대가 놓인 마루와 작은 욕실이 전부인, 채 10평도 안 되는 오두막이었다.
이사를 결정하자 가장 먼저 마주한 문제는, 책을 둘 공 간이 없다는 현실이었다. 문득 깨달았다. 마치 무슨 업보인 양 끌어안고 살아온 책들을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되었구나. 며칠간 지인들을 수시로 집으로 불러, 원하는 책을 마음껏 골라가라 했다. 가져가면서도 그들은 미안해했고, 내 마음을 같이 슬퍼해줬다. 그리고 남은 책들은 제주 유일의 헌책방에 넘겼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책들을 ‘대학살’한 기분이었다. 다시는 책을 모으지 않을 것이고 책 눈치 보며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집을 짓기로 했을 때, 비누는 열정적으로 ‘공동 서가’를 제안했다. 계단참이나 로프트를 활용한 멋진 서가 설치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출판 편집자답게 비누의 책은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문제는 내가 이미 책을 다 처분한 상태여서 비누 제안에 선뜻 호응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지근한 나의 반응에 비누도 슬슬 책을 처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 서가도, 서재도 없는 집이라니 어딘가 이상했다. 이제는 이사할 일도 없어진 마당에... 그래, 책을 한데 모으자 싶었다. 뒤늦게 비누에게 공동 서가를 만들자며, 책 처분을 멈추고, 싣고 오라 했다. 이렇게 해서 살아난 것이 우리의 ‘공동 서가’다. 대부분 비누의 책이지만, 대처분 뒤에 다시 생겨난 내 책도 섞여 있다.
가끔 다락에 올라가 읽고 싶은 책을 뒤적이노라면, 마치 나만의 은밀한 프라이빗 도서관이라도 가진 기분이 든다. 만약 이런 공동 공간을 만들지 못했다면 나는 또다시 책을 처분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캣워크 형태의 공간이라 책상까지 들여놓진 못했다. 하지만 서가가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마루는 그 좁은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쉬기도 하고, 가끔 이곳에서 외박(ㅋㅋㅋ)을 하기도 한다. 아늑하니 색다른 기분이란다. 갈수록 미로헌이 좋아지는데 그 공간이 한몫하고 있다고 한다. 책을 각자 공간에 보관했다면, 무슨 책이 있는지조차 몰라 필요할 때 나눠 읽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 곳에 모아두고 함께 이용하다 보니, 이제는 모두의 책이 되었다.
비누랑 가끔씩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하던 농을 던지며,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을 표하곤 한다.
"거 말이야, 주택에 살잖아? 그럼 도서관 하나씩은 있는 거 아니야? 푸하하하."
웃음 한 바가지에 손발 오그라드는 건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