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헌 탐구생활 - 공간이 바꾸는 관계의 풍경
루프탑이라고 하면 좀 오버일까? 하긴 ‘인스타 감성’이 지나치게 덧씌워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붕 일부를 파내고 앉힌 공간이라 ‘옥상’이라 하기는 좀 뭣하다. 우리끼리 주로 부르는 이름은 ‘전망대’. 그런데 또 막상 글로 쓰려니 그래도 ‘루프탑’ 이 낫겠다 싶다. 다소 오글거리더라도 말이다. 하기야, 뭣이 중한디? 이름이 대수랴.
사실 이 공간은 설계 막바지에 부록처럼 덧붙여진 아이디어였다. 그렇다고 존재감까지 부록인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미로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이 루프탑은 비누와 마루의 추진력으로 탄생되었다. 설계 초기부터 비누는 공원을 마주 보는 쪽에 전망 용도로 조그만 구조체라도 세우자고 제안했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 석양을 바라보고, 사계절 바뀌는 공원의 풍경을 눈에 담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대지 면적이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중정식 구조로 바뀌면서 전망대는 그저 아쉬운 희망사항 중 하나로 남고 말았다. 그러던 중, 아직 공사가 시작되기 전 어느 날, 비누 부부 눈에 공사 중인 근처 건물 하나가 들어오더란다. 공원을 사이에 두고 우리 대지와 수직 방향으로 놓인 건물이었다.
“저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어떨까?”
호기심에 직접 올라가 보니 시야를 가로막는 것 하나 없이 저 멀리 한라산 능선이 눈앞에 펼쳐지더란다. 비 걷힌 뒤였는데 나무 그림자까지 또렷이 드러나는 황홀한 풍경. 둘은 말없이 서 있다가 거의 동시에 외쳤단다. “전망대, 무조건 살려야 해!”
“지붕에서라도 한라산을 봐야 해!”
그날 이후로 비누와 마루의 주장은 한층 강력해졌다.
우리 집과 한라산 뷰 사이, 두 개의 나대지가 남아 있으니 언제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 집이 들어서는 순간 살롱에서의 한라산 뷰는 자연 사라지고 말 것이었다. 그러니 지붕에서라도 한라산을 봐야지! 나머지 우리도 적극 찬성. 양 소장도 수긍했다. 그렇게 해서 최종 설계 안에 루프탑이 끼워 넣어지게 된 것이다.
루프탑은 2층 베란다에 놓인 회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말하자면 지붕 위의 작은 쉼터다. 특별한 시설은 없다. 폭에 딱 맞춰 짜 넣은 목재 벤치가 전부다. 그저 바람과 하늘과 구름을 향해 뚫린 ‘하늘 창’이다. 비슷한 시기에 집을 지었던 내 지인은 당시 가끔 우리 공사 현장을 지켜보았다며 얼마 전 만나 고백하기를, 우리 집 2층 베란다의 그 파란색 회전계단으로 올라가면 무엇이 보일까 뭉게뭉게 상상이 피어오르더란다. 자기 집도 2층으로 지었다면 필시 설치했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루프탑 생김새는 소박하지만 그 효능은 결코 얕잡아볼 수 없다. 맑은 날, 그 자리에 서면 공원의 나무들이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봄이면 사방천지가 벚꽃으로 만개해 마치 옥수수 튀밥을 양푼 가득 담아놓은 것 같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꽃 대궐, 고개를 들면 눈부신 하늘 아래 장엄한 한라산 능선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 루프탑의 백미는 석양이다. 한낮의 정열을 식히며 서쪽으로 천천히 사그라지는 해. 그와 동시에 노랑, 주홍, 진홍 빛깔로 바뀌면서 하늘을 적셔가는 장면은 정말이지 장관이 따로 없다. 물감을 한데 풀어놓은 듯 번지는 노을, 마치 하루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듯한 순간을 우리는 루프탑에서 즐긴다.
입주하고서 맞은 첫여름, 루프탑에서 우연히 석양을 만났을 때 너무 셀렌 나머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석양의 루프탑 찍사’가 되었다. 대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해거름 무렵이면 어느새 계단을 오르고 있다. 서창 너머로 붉은 기운이 어른거리는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루프탑으로 달려가는 건 거의 반사에 가깝다.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댄다.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찍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루프탑은 우리 미로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가장 작은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이 미로헌의 중심일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한다. 비록 우리가 날마다 올라가지는 않지만 가끔씩이라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시 멈춰 서는 자리. 세상과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크게 열려 있는 창이 아닌가. 다락처럼 좁다란 나무 벤치에 앉아 360도 빙 둘러 주변 풍광에 취할 때면 마치 미로헌의 품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느낌이 들곤 한다.
정말 미로헌을 짓길 잘했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루프탑은 그래서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미로헌의 보너스이자 선물 같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