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우는 사람 따로,
꽃놀이하는 사람 따로, 얼씨구!

미로헌 탐구생활 - 공간이 바꾸는 관계의 풍경

by 조선희

나는 대문 앞 올리브나무와 두 그루의 금목서, 배롱나무 (백일홍), 여덟 그루의 에버그린이 심긴 곳은 ‘바깥마당’, 미로헌 중정은 ‘속마당’이라 부른다. 가운데마당, 중앙 마당, 안마당과 같은 이름으로는 성에 안 차서다. 감춰진 듯 열려 있는, 소박하지만 매력적인 우리 마당에는 ‘속마당’이란 이름이 꼭 맞는다. 물론 나만 속으로 그렇게 부른다. 식구들은 편하게 마당 또는 중정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미로헌의 외관이 “성채 같다”고들 말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층고가 높은 2층에 철제 대문이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보니 얼핏 철옹성처럼 보일 만도 하다. 나 역시 그런 인상을 받는다. 만약 미로헌이 평범한 4층짜리 주택이었다면 어땠을까? 계획단지 규제에 따라 높은 담을 쌓지는 못했을 테고, 앞마당은 길 가는 사람들의 눈에 훤히 들여다보였을 것이다.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 건너편 사무실 직장인들의 시선도 피할 수 없었겠지.


그야말로 우리 마당이 아니라 남의 마당이 되는 꼴. 그랬다면 한여름 대낮, 마루가 웃통을 벗고(이런 모습일 때의 마루를 나는 '카를로스'라 부른다 ㅋㅋ) 마당을 가로지르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당에서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 일상도 불편하거나 눈치 보여 꺼리게 됐을 게 뻔하다. 속마당의 진짜 매력은 바로 외부 시선으로부터의 완벽한 자유다. 속마당은 우리만의 세계다. 남의 시선을 걷어낸, 오롯이 우리가 즐기기 위한 공간인 것이다.


마당은 비누와 내가 주로 가꾼다. 올리브나무 전정이나 집 둘레의 잡초 제거 같은 일은 월례회의 후 다 함께 하지만, 꽃과 나무에 물을 주고 분을 갈아주고 비료를 주는 일과 같은 일상적 관리는 우리 둘의 몫이다. 마루나 수, 루나는 식물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억지로 함께 하자고 하지 않는다. 관심이 있어야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야 노동도 즐길 수 있으니까. 가끔 일손을 보태 주고, “예쁘다” “좋다”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집을 지으며 알게 된 사실인데, 비누와 나는 좋아하는 것이 아주 다르다. 나는 꽃을 좋아하고, 비누는 채소나 유실수를 좋아해서 가능한 한 뭐든지 손수 길러 먹기를 원했다. 나는 그저 보는 재미로 배롱나무와 수양매화를 심길 원했고, 비누는 제주 레몬나무를 심고 싶어 했다. 물론 둘 다 좋아해서 함께 고른 나무도 있다. 올리브, 호주 티트리, 호주 아카시아 같은 나무들이 그렇다.


자연스레 나무 관리, 씨앗이나 모종으로 채소 키우기는 비누가, 꽃 화분은 내가 관리한다. 말하자면 분업이랄까. 물론 그 경계가 명확하진 않다. 말이 좋아 분업이지, 사실은 내가 못 하는 걸 비누가 하는 것이다. 나는 꽃이 예쁘면 일년초든 다년초든 고민 없이 데려온다. 내 업무는 그저 물 잘 주고 비누가 알려준 대로 비료 주기와 꽃 예뻐해 주는 일밖에 없다.


반면 큰 나무의 전정이나 병해충 관리 같은 전문적 지식이나 기능이 필요한 일은 비누가 맡는다. 나는 아마추어 보조, 비누는 거의 전문가 수준의 식물 집사다. 그래도 비누는 단 한 번도 내가 못하거나 안 하는 걸 탓한 적이 없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벌레를 비누가 발견했을 때도

“언니가 돋보기를 안 껴서 보지 못했을 거야.”

한다.


나는 이렇게 그냥 묻어간다. 흐흐흐. 비누는 지난여름 2층 베란다 플랜트 박스에서 방울토마토와 오이, 고추, 가지, 깻잎, 허브들을 길러냈다. 나는 그냥 물만 몇 번 줬을 뿐인데, 그 맛난 열매를 신나게 따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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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 따로, 즐기는 사람 따로여도 OK!
한 지붕 아래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을’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열심히 가꿔 놓은 것을 다른 누군가가 기꺼이 누려준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야말로
마당 가꾸기의 매력이자 교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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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 생각 ~ 우리 속마당과 2층 베란다에는 회전 계단이 있잖아. 미로헌을 평범한 단독주택 이상으로 보이게 하는 작은 ‘킥’이자, 외부에 수직 흐름을 만들어주는 독특한 ‘길’ 이라 할 수 있지.
그러고 보니, 미로헌에는 계단이 꽤 많더라. 외부 회전 계단 두 개, 실내의 주계단, 살롱 서가로 가는 계단., 그리고 개인 공간에도 저마다 계단이 하나씩 있지. 창고에도 계단 사다리. 얼마 전에 구매한 틀비계까지, 계단적 요소가 집안 곳곳에 퍼져 있더라.
문득 이 계단들이 단지 공간을 잇는 수단 이상의 상징일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 서로 다른 생활 리듬과 사연을 지닌 우리가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 간극을 천천히, 부드럽게 이어주는 장 치. 멈춰 설 수는 없지만, 머물 수는 있는 그 중간 지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오르내리며 배워가는 중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