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멀티 스페이스',
샤이샤방한 작업실

미로헌 탐구생활 - 공간이 바꾸는 관계의 풍경

by 조선희

미로헌의 공유 공간 중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정작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아이러니한 공간이 있다. 바로 ‘작업실’이다. 마당에서 2층 베란다로 올라가는 회전계단 바로 앞, 커다란 유리문이 달린 이 공간을 방문객 중 먼저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설명하고 나서야 “아, 여기에도 공간이 있었네요?”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미로헌의 본채는 목구조지만, 차고와 작업실은 철근 콘크리트 방식으로 시공됐다. 우리의 아이디어는 아니었고 건축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인데, 주거공간이 아니어서 공법을 달리 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1년 열두 달 중 가장 짧고 수줍은 2월처럼, 이곳은 어딘가 ‘샤이’하고 은밀한 기운이 감돈다. 그런데 미로헌의 공간 중에서 이곳만큼 변화를 거듭하면서 정체성이 확장되어 온 곳도 없다.


출발은 ‘소리 나고 먼지 나는’ 작업실.

일종의 취미 활동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개인 브랜드를 가진 상품 디자이너 수의 의견이 주가 되었다. 디자인과 제작에 필요한 수의 각종 기계와 도구들을 일부 수납도 하고, 가죽 공예나 목공예 같은 작업을 함께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실내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곳,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막상 뭔가를 시도하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작업대와 수납장을 들여놓고 나면 사람 하나 겨우 움직일 정도였고, 두셋이 함께 무언가를 하기엔 너무 비좁았다. 결국 입주 초기, 이곳은 작업실보다는 창고에 가까운 상태로 방치되었다.


그러다 입주 2년째가 되었을 때 수의 짐이 빠져나가면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이 공간의 정체성과 활용 방법을 놓고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결론은, 주거 공간 밖의 활동 공간으로서, 최대한 실용적인 역할을 맡기자였다.


그 첫 번째가 바깥 주방으로 쓰기.

“가끔 마당이나 차고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쓰는 장비며 도구를 여기다 수납하면 어때?”

“냄새나는 음식 조리도 이곳에서 하면 되겠네!”


그리하여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스테인리스 조리대를 들이기로 했다. 수납 가능한 하부가 있는, 소위 업소용 조리대를 찾기 위해 비누와 나는 시내 몇 곳을 돌며 시장조사를 했고, 조건에 맞는 제품을 비누가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지금은 이 조리대가 작업실의 중심 가구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기에 비누와 마루가 육지 집과 사무실에서 가져온 오븐레인지, 냉장고까지 더해지며 명실상부한 ‘바깥 부엌’이 완성되었다. 생선 굽기는 여기 오븐레인지가 딱이다. 오래 보관하거나 부피 큰 식재료는 이곳 냉장고에 넣는다. 덕분에 삶의 질이 확연히 상승했다.


다음은 공구 창고로 쓰기.

비누는 주방 살림뿐 아니라 공구에도 일가견이 있는, 진정한 ‘도구적 인간’이다. 비누에겐 별의별 공구들이 종류별로 다 있다. 절대 공간이 좁으니 벽에 맞는 크기로 펀칭보드를 설치하고, 비누의 공구들을 일목요연하게 걸어두었다. 이제 이 공구들은 공동 물품이 되었고, 동시에 벽면을 장식하는 멋진 시각적 인테리어 요소가 되었다.


동시에 식물 재배 실험실 겸 창고로 쓰기

화분 서너 개만 관리하는데도 필요한 것이 많다. 분갈이용 흙, 모종삽, 전정가위, 비료, 약품 등등. 그런데 미로헌에는 크고 작은 화분이 수십 개에 달하고, 집 바깥마당엔 돌봐야 할 나무가 수십 그루다. 마치 아기 키우는 집이 온통 아기 짐으로 가득 차듯, 원예 물품은 점점 불어나게 마련이다. 작업실만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급기야 회전계단 밑 외부 공간에 앵글 수납장을 들여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온실을 갖추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비누는 작업실에서 놀라운 식물 재배 실험을 하기도 한다. 대문 앞 올리브 나무의 전정한 가지를 여러 방식으로 인큐베이팅해서 뿌리를 내리게 하거나, 망고 씨앗들을 버리지 않고 발아시킨다든가 하는, 내 보기에는 거의 과학 실험 수준의 '식물 집사' 활동이 작업실에서 이루어진다.




작업실의 도구들은 누구나 함께 사용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쓸 수 있고 쓰는 사람은 아직 비누뿐이다. 이렇듯 작업실은 미로헌의 ‘멀티 스페이스’다. 주요 거주 공간에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할 수 있는 곳, 우리가 시시때때로 모여 그 정체성과 용도를 고민해 온 곳. 작업실의 변천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이 집을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트로1010-만렙.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