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is the best, 루나의 정직한 방

서로 다른 방 - 네 개의 세계

by 조선희


내 생각에 미로헌에서 가장 ‘정직한’ 공간이다. 딱 1인 가구에 필요한 면적에, 꼭 필요한 요소들로만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아서일까. 오히려 공간 본연의 멋스러움이 살아 있다. 루나의 방은 미로헌에서 가장 깊숙한 곳, 가장 아늑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아래층은 차고, 주출입구는 여닫이 문이라 목구조 특유의 소음과 진동에서도 가장 자유롭다.


루나의 방 역시 한라산 뷰가 끝내준다. 방 안에서도 한라산이 보이고, 베란다에 나서면 더 가까이 와닿는다. 이 공간의 시그니처는 바로 2층 베란다로 이어지는 문. 그 옆으로 시원하게 나 있는 유리창이 개방감을 두 배로 만들어준다. 남쪽 면을 통째로 문과 창으로 마감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을 열면 바로 베란다. 빨래를 널거나, 콧바람을 쐬거나, 비누의 텃밭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토마토며 풋고추며 오이를 슬쩍 맛보는 건 루나만의 작은 특권. 가끔 루나의 슬리퍼 한 짝이 바람에 날려 속마당까지 날아가곤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마저도 소소한 웃음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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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방에도 다락이 있다. 비상용 침실처럼 쓰이는 곳으로, 찾아오는 가까운 지인이나 형제자매를 재우곤 한다.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는 맞춤 수납장을 짜 넣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그리고 루나의 방이 다른 개인 공간과 가장 다른 지점은 바로 이거다, 간이 주방. 비누, 수, 나 모두 공유 주방을 이용하지만, 루나는 다르다. “작은 주방 하나만, 방 안에 있었으면 해요.” 요구라곤 별로 없던 루나가 유일하게 소망했던 것. 아담한 싱크대, 벽 선반, 작은 냉장고로 구성된 이 주방은 루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집에서 요리는 거의 하지 않고, 대신 과일을 밥처럼 먹는 루나에게 이 작은 주방은 딱 필요한 만큼만 있다. 열원도 필요 없고, 씻고 보관하는 공간이면 충분하다. 제주에 이주했다고 해서, 셰어하우스에 산다고 해서, 사람이 쉽게 바뀌는 건 아니다. 아니, 굳이 바뀔 필요도 없다. 함께 사는 일이 즐거우려면, 각자의 속도와 취향, 성향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마지막으로, 내가 꼽는 루나 방의 가장 큰 매력은 창이다. 크기도 모양도 다른 창들이 각기 다른 풍경을 불러온다. 베란다 쪽 널찍한 사각형 창, 그 위의 고창, 바깥이 살짝 보이는 길고 슬림한 동쪽 세로창, 북쪽으로 난 적당한 크기의 창, 그리고 천창까지, 말 그대로 ‘창 부자’ 방이다.



그중 백미는 단연, 침대에 누운 채로도 한라산 뷰를 볼 수 있는 널따란 남쪽 창이다. 절제된 공간, 다양한 창으로 소리 없이 스며드는 빛. 루나의 방은 ‘간결함이 최선 simple is best’를 넘어 ‘좁을수록 넓다(less is more를 응용하자면)’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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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한 마디 ~ 비누 언니가 “제주에 집 지을 건데, 너도 같이 할래?” 하고 물었을 때, 와, 진짜 타이밍 기가 막혔지요. 그때 내가 얼마나 변화에 목말라 있었냐면, “인생을 바꾸려면 집, 직장, 사람을 바꾸라”는 말이 그냥 가슴에 확 꽂힐 때였거든요. 그래서 “그래, 공간부터 바꿔보자! 뭐라도 바꿔야겠다!” 이러고 뛰어든 거예요. 직장 바꾸고, 사람 바뀌고, 그럼 나도 좀 달라지겠지? 하는 기대에서요.
근데… 내가 진짜 웃긴 게, 정작 ‘집’에는 큰 욕심이 없었어요. 완전 실용주의자라서, 그냥 살 수 있으면 되지~ 뭐 어때~ 이런 스타일? 내가 막 아이디어 짜내고, 신박하게 인테리어 신경 쓰고, 그런 거 잘 못하잖아요. 그래서 살면서 종~종 생각하게 돼요. “아, 욕실이랑 파우더룸 너무 좁다. 수님 거 따라 할 걸 그랬나” 하고 은근 후회한답니다. 아니, 진짜 파우더룸은 수님이 정답이야. 예쁘고, 넓고, 실용적이고. 괜히 부러워 죽겠다니까요.
그. 러. 나. 나한테도 비밀병기가 하나 있다죠! 바로 천창! 실은, 실용성은 별로예요. 그. 래. 도 천창은 무조건 감성이죠! 실용성은 그냥 포기할래요. 유럽 여행 다닐 때 천창 있는 숙소 묵으면서 로망을 품었는데, 미로헌 지을 때 그냥 질렀잖아요. 만족도 100%예요. 다음에 또 집을 짓게 된다면? 그땐 나도 좀 욕심부려볼까 봐요. 파우더룸부터 넓혀야지. 아주 그냥 두 배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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