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이라 쓰고
'우리'라고 읽는 사람들

무연고 우연가족의 탄생 - 관계의 재발견

by 조선희


토요일 아침. 오랜만에 햇살이 쨍하다. 빨래하기 딱 좋은 날이다. 태양광 설비를 갖춘 주택에서는 해가 좋을 때 전기를 많이 쓰는 게 조금이라도 유리하다. 빨랫감을 챙겨 세탁실로 가는데, 2층에서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 달 2층 청소 당번은 누구더라. 단체대화방을 열어보니 수다.

“제가 오늘 내내 미팅이라 좀 일찍 시작했어요. 소음, 양해 부탁요^^”


1층 세탁실에선 세탁기가 돌아가고, 2층 살롱에선 청소기가 ‘열일’ 중이다. 미로헌의 평범한 토요일 아침 풍경이다. 잠시 후, 주방에서 익숙한 유튜브 소리가 흘러나온다. 비누가 아침을 준비 중인 모양이다. 혼자 주방을 쓸 땐 늘 유튜브를 켜지만 내가 나가면 재빨리 끄는 게 비누의 루틴이다. 지금, 내가 “짜잔~” 하고 등장할 타이밍이다.

“굿모닝!”

“어, 언니, 굿모닝!”


우리는 주방 한가운데 놓인 아일랜드 작업대와, 자기 냉장고, 팬트리, 그릇장을 오가며 각자의 아침을 준비한다. 벽에 쪼르르 놓인 냉장고들, 그중 두 개는 비누의 것이다. 하나는 일반 냉장고, 다른 하나는 냉동고와 김치냉장고 일체형이다. 내 김치가 많을 땐 그의 김치 냉장고 한 칸을 나누어 쓰고, 가끔 비누가 냄비째로 음식을 넣어야 할 땐 널찍한 내부를 가진 내 냉장고를 이용한다. 폭 2미터가 훌쩍 넘는 그릇장 가득 다양한 그릇과 컵들, 싱크대 칸칸이 수납된 각종 냄비와 프라이팬들 역시 ‘누구의 것이지만, 누구의 것만은 아닌’ 살림들이다. 필요한 사람이 쓰고 잘 닦아두면 된다.


혼자 먹는 내 아침 메뉴는 늘 고정되어 있다. 사과 반쪽, 방울토마토 대여섯 개, 그릭 요거트 서너 스푼, 삶은 계란 하나. 비누는 마루 몫까지 함께 준비하고, 그날그날 메뉴도 달라 준비 시간이 더 길다. 이럴 땐 ‘혼밥’의 자유가 꽤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아침 쟁반을 들고 내 방으로 돌아온다. 곧 비누도 마루와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하겠지. 둘은 2층 살롱에서 자주 식사를 한다. 살롱은 아침이면 선명한 한라산 자락, 저녁엔 붉은 노을을 반찬 삼을 수 있는 최고의 레스토랑이다. 주말이나 휴일에 오늘처럼 청소시간과 겹치면 잠시 브레이크 타임이다.


이윽고 청소기가 멈추고, 설거지하는 마루 옆에서 내가 그릇을 정리하는 사이, 2층 계단을 다다닥 내려온 수가 휘리릭 집을 나선다.

“다녀올게요.”

“오늘 저녁에 월례회의 안 잊었지? 이따 보자, 수고!”

짬이 있었으면, 현관실에 서서 ‘어제 사무실에서 어쩌고 저쩌고...’ 스몰토크가 이어졌겠지만 바쁠 땐 총알같이 사라지는 수.


루나는 아직 조용하다. 일어났다면 분명 살롱으로 나와 커피를 내렸을 텐데, 주말 늦잠을 즐기는 중인 듯하다. 직장인의 유일한 사치이자 휴식, 바로 늦잠과 낮잠. 불과 몇 해 전, 나의 주말도 그랬다. 루나는 웬만큼 기력을 되찾으면 내려와서

“점심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묻고는, 자기가 가 본 맛집 중 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점심 먹고 나서는 지난 비에 한창 자란 속마당과 바깥마당 풀을 함께 정리하자고 해야겠다.


느긋한 주말 아침, 이렇게 다섯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함께 살지만 닮은 구석은 많지 않다. 생활 리듬도, 식성도, 성격도, 나이도 모두 다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다름이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편안하다. 우린 서로 가족도, 친구도 아니니까, 그래서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하니까. 상대방의 리듬을 존중하며, 시간과 예의, 작은 습관들을 나누어 가는 사이 ‘남’보다는 ‘우리’에 가까워지고 있는 게 실감 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우리’가 가능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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