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우연가족의 탄생 - 관계의 재발견
비누가 “제주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꺼낸 건, 코로나19가 본색을 드러내던 2020년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그렇게 몇 번 통화만 하다가 추석을 며칠 앞두고 마루와 함께 오랜만에 제주에 내려왔다. 비누의 바람을 듣고 나는 미리 체크해 둔 전원주택 몇 곳을 보여줬다. 풍광이 좋고 살기 좋아 보이는 마을 몇 군데를 나들이 삼아 같이 다녔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들은 단순히 '제주 한 달 살기' 같은 체험이 아니라, 아예 이주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사실 이들은 이미 1~2년 전부터 지인들과 함께 서울시 공동체 주택 사업 지원을 준비하다가 땅 매입이 막판에 틀어지면서 꿈을 접은 상태였다. 다섯 가구 구성원의 직장 위치, 자녀 학군, 각자의 예산, 서울시 기준까지 고려한 땅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타이밍에 제주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이다. 서울보다 땅값도 착했고, 내가 이미 제주에 살고 있었으니까.
며칠간 제주 곳곳을 둘러보던 중, 비누가 불쑥 물었다.
“언니, 우리랑 살래?”
“엥? 같이 살자고? 너네랑 제주에서?”
“어. 언니가 좋다면 우리가 제주로 와서 언니랑 같이 살 수 있어.”
“가족도 아닌데, 같이?”
숨이 잠깐 멎는 느낌이었지만, 입은 이미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하기야, 가족이라고 꼭 같이 살기 쉬운 것도 아니지. 나도 좋아. 제주시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럼 시내에서 살면 되지. 우리도 꼭 중산간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 나 너랑은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너무나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놀랍게도 나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아이들과 살 가능성 제로, 새로운 반려자를 만날 가능성도 제로, 제주를 떠날 마음은 더더욱 제로였던 나는 이 제안이 내 인생의 또 하나의 대안이자 기회처럼 느껴졌다. 시내권이라는 조건은, 아직 정년이 2년 남짓 남은 내 출퇴근 편의를 위한 일차원적인 판단이었고, 감귤 농사꾼 경력자로서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이 1도 없었기에 붙인 단서에 불과했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세 사람이 함께 살 집이 필요했고, 기존 주택을 매입해서 리모델링하기보다는 새로 짓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문제는 땅. 시내권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찾아야 했다. 좋은 조건의 택지지구부터 진입로가 까다로운 저렴한 땅까지, 온갖 후보지를 보러 다녔다. 바쁘고 고단한 일정이었지만, 마냥 즐겁고 신났다. 이십여 년 전, 우리 가족이 제주로 이주할 때 느꼈던 설렘과 긴장감이 다시금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는 원래 같이 살기로 예정된 사람들이고, 이제야 그 운명을 깨닫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처럼, 맹렬하게 땅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믿기 어려울 만큼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땅을 발견했다. 계약까지, 열흘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빛의 속도였다.
서쪽은 어린이공원, 남쪽은 8미터 도로에 접한, 네모반듯한 정남향의 땅. 햇살을 가득 받으며 고개를 들면 바로 그 자리에 한라산이 있었다. 한 면은 병문천으로 이어지는 깊고 넓은 건천, 다른 한 면은 이국적인 분위기의 신축 건물들에 인접한 정갈한 공원. 그 공원은 머지않아 우리의 열린 정원이 될 것이다.
바로 앞에는 넓은 공영주차장이 있고, 우리 대지를 중심으로 세 필지의 나대지가 둘러싸고 있어 건축 민원 걱정도 없었다. 물론 자금 문제와 ‘10년은 늙는다’는 말처럼 지난한 건축 과정이 눈앞에 있었지만, 계약을 하고 나니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때까지 나는 내 생에 집을 짓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낯선 길에 발을 들여놓는, 묘하게 달뜬 기분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바로 알렸다. “앞으로 너희와 같이 살 가능성은 거의 없잖아. 그래서 살던 집을 팔고 비누 이모네와 집을 짓기로 했단다.”
아이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친척 하나 없는 제주에서 엄마 혼자 사는 게 늘 신경 쓰였는데,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이나 나나, 피붙이가 아닌 타인과의 동거를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던 건, 그 누구도 아닌 비누의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비누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