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럭 파티*, '그까이거' 뭐 대충~

by 조선희
*포틀럭 파티 - 참석자들이 각자 음식을 준비해 와 함께 나누어 먹는 방식. 사실 우리처럼 생판 남남끼리 한 식탁에서 각자의 반찬을 내어놓고 먹으면 그게 바로 소박한 포틀럭 파티가 아닐까?(써니 생각)


올 추석 연휴는 유난히 길었다. 아이들은 오지 못했다. 세 아이 모두 연휴 기간 내내 근무 일정이 잡혀 있었다. 날짜를 맞추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항공료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움직이는 게 낫겠다 싶어 길을 나서볼까도 했지만 그 또한 수월치 않았다. 그래, 언제 우리가 명절 때마다 반드시 얼굴 보고 살았더냐, ‘각자즐추(즐거운 추석)’로 노선을 급변경했다.


미로허니 중에 친가에 간 사람은 루나 혼자였다. 항공편 사정으로 추석 당일 이른 아침 귀향하는 일정이었다. 추석 전전날 장을 보고 온 비누와 수가 추석맞이 포틀럭 파티를 제안했다. 루나가 귀향하기 전날 ‘미로허니 5남매’ 완전체로 추석상을 차려 먹자는 것. 디데이는 자연스레 추석 전날 12시, 점심으로 정해졌다. 발가락 골절로 한 달 넘게 했던 깁스를 이제 겨우 푼 루나는 장보기가 어렵겠다 싶어 당연히 면제.


비누는 최근 들어 몇 차례 우리에게 선보인 결과 ‘쌍따봉’을 획득한 육전과 후식 과일 배를 내놓겠단다. 나는 고향의 언니가 보내준 보리굴비와 총각김치,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하기로 했다. 쌀밥도 함께. 수의 메뉴는 불고기. 오올~~ 수의 불고기를 맛보는 날이 올 줄이야.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양념된 불고기를 샀거든요.”

“그래도 그게 어디야~~? 직접 양념하다가 낭패 보느니 검증된 맛이 최고지.”


작년 추석에 내가 내놓은 메뉴는 잡채였다. 보통 손이 가서 잘하지 않는 황백 달걀지단까지 고명으로 올려, ‘엄마표 집밥’에 목마른 미로허니들의 입맛을 채워줬더랬다. 올해도 '그까이거' 하려면 뭐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잡채는 내년에, ‘해거리’ 메뉴로 준비하기로 했다.


당일 아침의 해프닝.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루나가 외출을 하는 것이었다.

“어디 가? 우리 오늘 점심 같이 하기로 했잖아.”

“네? 못 들었는데요. 미용실 예약이 되어 있어서 나가는 길인데요.”

“엥? 아무도 말을 안 해줬구나! 어쩜 좋아!”


아뿔싸, 메뉴도 우리끼리, 일정도 우리끼리, 친절하게 루나를 면제해 준 것까지 죄다 우리끼리 한 이야기였을 뿐, 루나에게는 그 누구도 전달하지 않은 것이었다. 한편으론 어이쿠, 스스로들 머리를 쥐어박으면서도 한편으론 이게 뭐냐며 까르르... 결국 루나가 귀가한 뒤에 먹는 것으로 일정은 일단락되었다.

공유 주방은 이내 맛난 냄새가 진동하고 거침없는 우리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어우러졌다. 서로 만든 요리들을 간 봐주고, 맛있다고 칭찬해 주고, 약간 모자라는 맛은 지혜를 모아 단박에 ‘맛 회생 프로젝트’를 가동해 완성도를 높였다. 생판 남남끼리, 음식을 나누며 이렇게 명절을 같이 보내다니 이젠 진짜 허물없는 식구가 되었구나 실감이 났다.


사실 추석이어서 추석맞이 포틀럭 파티가 되었지만 우린 마음만 먹으면 날마다 포틀럭 파티가 가능하다. 포틀럭 파티, 그게 뭐 어렵다고? '그까이거', 뭐, 대충 따뜻한 밥과 각자 소박하지만 나름 정성을 다한 반찬 몇 가지만 있으면 되는 거지. 신경을 조금만 더 쓰면 각자 내놓은 반찬들로 상설 뷔페도 ‘쌉가능’이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랑 가느냐가 중요하다더니
우리네 인생 여정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왕 생판 남남이랑 살기로 한 나의 노년,
'마음 궁합'이 잘 맞는 이들을 만난 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