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는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거의 입에 달고 사셨다. 말하는 대로 실제로 일어날 수 있으니 특히 나쁜 기운의 말을 쓰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나무 앞에서조차 말을 가려야 한다는 어머니 말씀은 정말 의아했다. 마치 미신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내가 유년을 보냈던 옛집 마당에는 배, 앵두, 포도, 모과, 대추, 감나무 등 유실수가 많았다. 그중에 모과와 대추는 특히 해거리가 심했다. 그 나무들 곁을 지나면서,
“어이쿠, 올해는 왜 이 모양이람. 겨우 몇 개만 달렸네.”
라고 말하는 것은 금기였다. 말이 씨가 되어 다음 해에도 과실이 빈약하게 달린다는 것이었다.
한두 개밖에 안 열린 모과를 딸 때에도 어머니는 맨 손으로 똑 따는 법이 없었다. 큼지막한 광주리를 나무 밑에 받쳐놓고 땄다. 대추도 마찬가지였다. 많이 열리는 해에는 몸집 작은 내가 올라가 흔들거나 어머니가 나무 아래서 기다란 막대기로 휘휘 저어야 했지만 해거리한 해에는 정말 몇 알 달리지 않았다. 그때도 어머니는 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큼지막한 광주리를 받쳐놓고 땄다. 나무가, 텅 빈 큰 광주리를 보면서 ‘내년에는 가득 채워야지.’라고 작심을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은회색 숏컷 스타일이다. 말이 씨가 된 것이다. 어머니께 제대로 보고 배우지 못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말의 씨를 뿌린 결과다. 이것을 깨달은 것은 삭발을 하고 나서였다. 유방암 수술 후 첫 번째 세포독성 항암주사를 맞은 지 열흘 만에 머리카락이 우수수 뽑히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그때의 당혹감은 그 어디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한 움큼씩 뿌리째 뽑히는 머리카락과 미처 빠지지 않고 간당간당 매달려 있는 머리카락이 뒤엉키면서 어찌 손을 쓸 수가 없는 지경이 되기까지 사나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비누와 함께 미용실을 찾았다.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버린 내 모습은 정말이지 낯설었다. 머리통이 예쁘게 생겨서 정말 잘 어울린다고, 비누가 연신 감탄 섞은 위로를 했지만 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상실감을 채워주진 못했다. 과연 언제쯤에나 원래의 내 모습으로 회복이 될까? 회복이 되기나 할 것인가? 깊고도 긴 한숨뿐이었다.
순간, 아차! 그동안 내가 버릇처럼 해왔던 말이 생각났다.
“정년퇴직하고 나면 염색 안 할 거야. 염색한 머리칼을 다 잘라내고서, 고잉그레이 과정 동안만 몇 달 집에서 칩거하지 뭐. 그러노라면 금세 반백발이 될걸!”
어쩔 수 없이 삭발해야 했고, 수술 후 염색은 당연히 그만두었으며, 1년 넘게 칩거했다. 그 뒤로 감질날 만큼 천천히 자라난 머리칼은 이미 반백발을 넘어서 있었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다만 내가 행복하게 상상하던 방식이 아니었던 것뿐이다.
최근 식당에서 모임을 가질 때였다. 종업원이 한 자리에 앉은 우리 여섯 명 중에 가장 먼저 내게 서빙을 해주었다. 내 맞은편에는 팔순을 갓 넘기신 대 선배가 계셨는데도 말이다. 처음엔 종업원의 실수려니 여기고 내가 받은 쟁반을 선배 앞으로 놓아드렸다. 문득 스치는 생각. 아, 저 종업원은 실수를 한 게 아니라 나를 제일 나이 많은 사람으로 본 게로군. 선배는 새카맣게 염색한 데다 머리숱도 아직까지 풍성하니, 반백발의 나를 더 연장자로 본 것이 분명했다.
내가 뿌린 말의 씨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정년을 앞두고 사람들이 퇴직 후 계획을 물어올 때마다 내가 했던 대답.
“60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완전히 벗어날 거예요. 60 이전과 이후의 삶의 방식이 같다면 60이 된 의미가 없지 않아요? 난 정말 다르게 살 거예요. 전혀 다르게!”
지금도 이 말을 기억하는 지인이 적지 않다. 그때는 뭔가 오랜 관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포부이자 기대에서 한 말이었겠지.
결과적으로 나는 지금 60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일단 암을 겪었으니 어찌 이보다 더 전혀 다른 삶을 살 것인가.
거기에 더해 생판 남남끼리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새로운 삶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러고 보면 어머니가 늘 경계하라 하셨던 그 ‘씨’는
단지 불길한 예언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암시하는 무의식적인 시그널 같은 건 아닐까?
내 머리와 마음이 머금고 있던 말들이 내 입을 떠나면서 진짜 ‘씨’가 되어버린 지금의 내 삶. 그 씨앗은 '생판 남들과의 삶'이라는 낯선 내 인생의 텃밭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중이다. 머잖아 어여쁜 꽃송이를 피워 올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