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뒤 남는 것

by 조선희
얼마 전 올리브와 이별하였다.
어느새 한 뼘만큼 해가 길어진 쌀쌀한 봄날 늦은 오후였다.


저녁을 차려 먹고 비누와 나는 올리브 앞에 섰다. 잠시 착잡하기 그지없는 눈길을 주고받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거사였다. 사실 작업 준비는 이른 오후부터 시작되었다. 점심을 먹으며 먼저 비누가, 이제는 올리브를 보내줄 때가 되었다고 말했고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을 하고 나니 도구가 필요했다. 공구 부자 비누에게도 없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톱이었다. 우리는 그 길로 휑하니 나가 톱을 사 왔다.


대문 앞 올리브나무에 이상이 생긴 건 지난봄이었다. 아니, 이상을 발견한 것이 봄이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무성하게 자라던 올리브의 배신—이렇게 쓰자니 더 마음이 아프지만—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비누와 마루가 장기간 집을 비우고 돌아온 초여름, 올리브는 분명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몇몇 가지의 이파리들이 배배 꼬여 있었고, 마치 심각한 영양실조와 갈증을 겪고 있는 듯 보였다.


처음엔 ‘이러다 좋아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비누가 부재한 동안 마당 관리를 맡았던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5월 들어 날이 급격히 더워지고 건조해지면서 거의 매일 물을 줬는데 어쩌다 한두 번 물 주기를 건너뛴 탓일까. 내 탓인 것만 같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지만 올리브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저 올리브나무가 어떤 나무인가. 미로헌의 본격적인 조경에 들어가기 전, 비누가 수소문해 찾아낸 화원에서 오래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고른 나무였다. 하얀 외벽과 파란 대문에는 올리브가 딱이라며, 만만치 않은 값을 치르고 데려온 나무. 처음에는 마루 키를 살짝 넘는 정도였지만 우리와 함께 지내는 동안 아름드리로 자라 우리 집의 ‘간판’이 되었다. 실제로 ‘미로헌’ 현판에도 풍성한 올리브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집에 오는 사람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자라느냐고, 비법이 뭐냐고, 제주에서도 올리브가 되느냐고 감탄하곤 했다. 그렇게, 딱 3년. 우리는 결국 이별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날 톱을 들기 전까지 기다림과 기대의 시간이 꽤 오래 이어졌다. 나는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해 벌어진 일 같아 속을 끓였고, 비누는 원인을 찾기 위해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자생수목 이식 성공률에 관한 연구였다. 이식 후 새순도 잘 돋고 아무 문제 없이 자라다가 3년이 지나 돌연사하는 비율이 31%에 이른다는 내용. 관수나 병해충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은 나무를 너무 깊이 심어 뿌리가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질식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올리브뿐 아니라 바깥마당의 나무들 대부분이 두껍게 석분 이불을 덮고 있었다. 에메랄드그린 나무의 잎이 누렇게 뜨고, 배롱나무 가지가 시들해 보였던 것도 혹시 같은 이유일까. 비누와 나는 나무의 뿌리목이 지면과 만나는 지점까지 석분과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침묵 속 우리의 노동은 날이 어두워져서야 끝났다.


“여기에 다시 올리브를 심을까?”

“또 심고 싶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그래, 여긴 비워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봐봐. 환한 벽이 드러나니 색다른 느낌이 들잖아?”

“그렇지? 이별은 이별로 끝내자.”


우리는 잠시 올리브가 서 있던 자리를 서성이며 헛헛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기 같던 올리브가 어느새 자라 꽃을 피우고, 예쁘디예쁜 열매를 맺는 모습을 지켜보며 얼마나 신기하고 기뻤는지.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아도 그 순간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 수 있었다.


동시에, 그동안 무겁게 짓눌렸던 마음도 서서히 풀리는 느낌이었다. 혼자 살며 키우던 나무가 시들었다면 며칠 속상하다가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돌보던 나무의 돌연사는 달랐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닌데 마치 내 보살핌이 부족했던 결과인 것처럼 책임감이 가슴 한쪽을 오래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별을 하고 보니 슬픔과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비누와 함께 걱정하고 애태우던 시간이
위안으로 되돌아와 나를 가만히 다독여주는 듯했다.
공간만이 아니라 감정의 온도까지 나누는
우리의 셰어라이프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간 경험이었다.
올리브와의 이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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