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by 조선희


지인을 통해 서로의 존재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정작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난 적은 없던 K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주택가의 조용한 카페에서였다. K는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내 일상을 가끔 들여다보고 있었다며,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어쩐지 낯설지 않은 느낌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미로헌으로 흘러갔다. K는 생판 남남끼리 함께 사는 것도 쉽지 않은데, 또래 친구도 아닌 후배들과 산다는 것이 대단하다며 나를 치켜세웠다. 혼자 살면 다 내려놓고 나 편한 대로 살 수 있을 텐데, 후배들과 함께 사니 ‘큰언니’로서의 위엄을 보여야 하지 않느냐는 걱정이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게 위엄 같은 것은 애초에 없고, 누군가 위엄을 세우려 드는 순간 관계는 어긋나기 마련이라고. 그저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뿐이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그 ‘노력’이라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밖에서 늘 긴장하며 사는데, 집에서라도 무장해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K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선택의 문제다. 받아들이면 일상이 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버거움이 될 터.


“서로 공감하고 합의하는 수준에서 루틴이 만들어지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물론 사람의 일이니, 앞으로 새로운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요.”

그날 우리는 나이 들어가는 처지에 자주 만나 서로 응원하자는 약속을 나누며 헤어졌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내가 그때 말했던, 막연하게 예감했던 그 ‘새로운 어려움’이 불쑥 현실로 찾아왔다.




며칠 여행을 다녀온 뒤 심하게 앓아누웠다. 두 다리에 벌겋게 두드러기가 올라왔고, 목은 침을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부어올랐다. 처음에는 그저 목감기려니 여겼다. 병원에 다녀와서 이삼일을 자리보전했다. 비누가 빌려준 가습기와 습식 흡입기를 사용하니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기분에 불과했다. 이내 혀에 큰 돌기가 솟기 시작했고, 그것이 터지면서 입안이 피로 가득 찼다. 컨디션이 나쁠 때마다 나타나던 익숙한 증상이긴 했지만 출혈 사태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견딜 만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갑자기 숨이 막혀 잠에서 깼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기가 꽉 막혀버린 느낌이었다. 명치를 눌러보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위가 움직임을 멈춘 것만 같았다. 차라리 토사곽란이 백 번 나을 것 같았다. 방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화장실을 드나들었지만 토할 수도 없었다.너무 괴로워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이러다 까딱하면 정말 죽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사람들을 깨워야 할까.

비누를 깨워 도움을 받을까.

출장 중인 마루 대신 수나 루나를 깨워 응급실에 데려다 달라고 해야 할까.

아침에 출근할 사람들을 지금 깨워도 되는 걸까.

차라리 119를 부를까.

하지만 그러면 모두가 잠에서 깰 텐데.


그 고통 속에서 나는 아무 결정도 내릴 수가 없었다. 도움을 청하는 순간 ‘폐를 끼치는 일’이 되고 말 것 같았다. 내가 부탁하면 누구라도, 아니 모두가 달려와 도와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야심한 시각, 그들의 잠을 깨울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끙끙대다가, 겨우 사혈 침을 찾아 손가락 끝을 몇 번이고 따고, 수십 번 토악질을 해댔다. 그러다 결국 탈진하듯 쓰러졌다. 잠시 호흡이 가라앉았고, 그대로 옅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새벽 세 시였다. 한 시간 남짓 홀로 사투를 벌였던 것이다. 다행히 증상은 조금 진정되어 있었다. 나는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비로소 살아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온몸을 타고 퍼져나갔다.


아침이 되어 병원에 가려고 주섬주섬 나서는 길, 주방에서 마주친 비누가 깜짝 놀랐다.

“언니, 얼굴빛이 심상치 않은데? 더 나빠진 거야?”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밤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던 비누의 얼굴이 굳어졌다.

“왜 안 깨웠어?”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좀 견디면 될 것 같았어. 다들 깊이 잠든 시간이라 깨울 수가 없었어.”

“그러자고 함께 사는 거잖아. 다른 일도 아니고 119를 생각할 정도였으면 당연히 우릴 깨웠어야지.”

비누로부터 새벽 상황을 전해 들은 수와 루나도 화들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아픈데 우리들 출근 걱정은 왜 하신 거예요? 말도 안 돼요.”


왜 안 깨웠을까.

왜 못 깨웠을까.

깨우면 당연히 일어나 도와주었을 사람들이었다. 귀찮아하거나 불편해하거나 마지못해 움직였을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들 달려와 내 등을 두드려주고 물을 건네고 병원에 데려갔을 사람들이었다.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깨울 수가 없었다.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
몸보다 먼저 마음이, 혼자 버티는 법을 배운다.
아픈 것도, 힘든 것도, 가능한 한 혼자 감당하려 한다.
그것이 타인에 대한 예의라고, 그것이 어른의 태도라고 믿으며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이다.
내가 손을 내밀어 누군가를 돕는 일은 어렵지 않은데,
내 일로 남의 손을 빌리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생판 남들과 함께 살며 서로를 돌보자고 약속까지 했으면서도(아프냐? 그럼 소문을 내라고! https://brunch.co.kr/@d328ebd0223c449/51)나는 아직 그 약속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혼자였던 긴 시간이 내 안에 깊이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못한 채 말이다. 미로헌 살이 4년째 접어들며 만난 ‘새로운 어려움’의 실체였다.


“알았어. 미안해.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꼭 깨울게.”


그날 밤 나는 혼자였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가 깨우기만 하면 벌떡 일어나 나를 보살펴 줄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들에게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