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좀 하면 어때!

by 조선희

며칠 전 점심시간, 비누 부부랑 “오늘은 또 뭘 해 먹지?” 하다가 일전에 약속이 있어 다녀왔던 소규모 뷔페식당을 내가 추천했다. 20명 남짓한 모임이었는데, 네댓 가지 회가 깔끔했고 다른 요리들도 과하지 않고 괜찮았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우리 셋 다 본전 생각을 하며 돌아와야 했다. 추천한 내가 민망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아마 그때의 메뉴는 모임 성격과 규모에 맞게 별도로 구성한 모양이었다.


금세 돌아온 저녁시간. 점심 메뉴 선택 실패를 만회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메뉴는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세발나물과 뜨끈한 소고기 미역국. 미역을 소금물에 담가 불리고 소고기를 참기름에 볶아 국을 앉힐 즈음 비누가 주방에 나왔다.

“미역국이야? 스산한 저녁에 먹기 딱 좋은데! 난 북어포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릴게.”


끓기 시작한 미역국 간을 비누에게 맡기고 난 세발나물을 무치기 시작했다. 미리 씻어 체에 밭쳐둔 세발나물에 언제나처럼 소금으로 간을 하고 참치 액젓과 다진 마늘을 거짓말처럼 살짝 넣은 뒤 볶은 깨와 참기름을 휘휘 둘렀다. 잔뜩 기대를 하고 맛을 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조물조물 손맛을 입힌 뒤 다시 맛을 봐도 예전의 맛이 아니다. 이래 봬도 마루가 인정한 세발나물 맛인데 말이다. 비누에게 맛을 봐달라고 했다.


“언~~~니, 안 데쳤수?”

아뿔싸! 데치지도 않고 생나물을 무치니 예전의 맛이 날 리가 있나.

“아, 어떡해!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주부 경력 40년짜리가 이게 말이 돼?”

나는 거의 울상이 되고 말았다. 한두 번 해봤어?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이야 뭐야, 치매야 뭐야? 온갖 자학 멘트가 내 입에서 쏟아졌다.

“아이 참, 이 정도 갖고 뭘 그래, 언니. 그럴 수도 있지.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거지. 그냥 샐러드처럼 먹어도 되지 않을까?”


비누의 위로에 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그래, 순서를 바꾸자. 어쨌든 살려봐야지.”

마치 양념한 고사리나물 볶듯 세발나물을 살살 어르고 달래며 볶았다.

“나 미친 거 아니야?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언니, 미친 게 아니고 다분히 정상적인 거야. 가끔 회로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는 거지. 우리가 그럴 나이라고.”

나물이 꼬순내를 풍기며 볶아질 무렵 겨우 진정이 된 내가 맞장구쳤다.

“맞아. 이만한 게 어디냐? 어찌 됐든 입으로 들어가게끔 수습은 할 수 있잖아.”

그제야 마주 보고 크게 웃어댔다.


누군가와 함께 살기에 가능한 마무리였다. 서로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실수도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살다 보면 나만 실수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까 따스한 ‘공감대의 우산’이 펼쳐지는 것이다. 혼자였으면 계속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자책하느라 기분을 완전 망쳤을 게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없던 난독증 비슷한 증세도 자주 생긴다. 비누가, 지난번 내게 주었던 배수구 클리너 남은 게 있느냐고 톡을 보내왔다. 언젠가 내 욕실 하수구에서 심하게 냄새가 올라온 적이 있었다. 비누가 듣더니 자기에게 꽤 효과적인 클리너가 있다며, 세 통이나 줬다. 그보다 전, 새로 들인 나왕 합판 수납장에서 새 가구 냄새가 심할 때는 고형 탈취제를 건네주기도 했다.

나는 비누 톡을 보자마자 답장했다.

“지난번 쓰고 조금 남은 걸 신발장에 넣어뒀어. 지난번엔 네게 꾼 거니까 이번엔 내가 살게. 내 것도 세 개 더 추가해서 주문해 주삼.”

요즘도 가끔씩 하수구 냄새가 올라와서 디퓨저와 스프레이를 동시에 쓰고 있는데 탈취제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느낌이 싸했다. 다시 톡을 열어보니 비누가 말한 건 액체 클리너였던 것. 내가 답하길, 쓰고 남은 걸 신발장에 넣어두었다 했으니 얼마나 기묘했을까나. 그래서였는지 비누는 읽기만 하고 답은 없는 상태였다. 이럴 땐 직접 통화가 훨씬 낫다. 전화를 걸었다.

“미안! 내가 말한 건 클리너 말고 탈취제였어. 내가 요즘 계속 탈취제 생각을 하다 보니 그렇게 썼네.”

“어쩐지, 좀 이상하다 했어. 이따 얼굴 보고 이야기하려 했지.”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깔깔거렸다.


어디 이뿐인가. 문자로 보내오는 약속 시간도 대충 읽고서는 일찍 나가 뻘쭘한 시간을 보내거나 늦어서 예의가 아닌 경우도 허다하다. 나이가 들면 몸 따로 마음 따로라더니, 정말 딱 맞는 말이다. 예전의 나답지 않게 대충 읽고 넘기고, 판단하고 싶은 대로 판단하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실수를 해도 함께 웃어 주고 위로해 줄 식구들이 있어서 망정이지 혼자 살았다면 여지없이 머리를 쿵쿵 찧으며 스스로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을 게 뻔하다.


걷잡을 수 없는 노화의 속도에 반비례해,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속도만큼은
의식적으로 감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날마다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