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미로헌 회식을 했다. 크리스마스와 이브는 피하고, 연말과 새해를 앞두고 귀향할 루나의 일정을 헤아려 잡은 자리였다.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한 『나이 60, 생판 남들과 산다』가 올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해, 내가 한 턱을 내기로 했다. 세밑이라 다들 바쁠 텐데도, 모두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시간을 내주었다. 축하한다고, 고생했다고들 했지만 사실 이 글은 애초에 나 혼자서는 쓸 수 없는 이야기다. 내가 대표로 써도 된다고, 그렇게 써 보라고 허락해 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야말로 미로허니들에게 깊은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다.
장소는 시내 호텔 뷔페. 뷔페 자체가 매력적이라기보다는, 제주라는 장소적 특성과 미로허니들의 식성을 두루 고려한 타협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제주라면 으레 신선한 회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게다가 지금은 막 방어철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는 회 종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다음 제주 대표 메뉴는 흑돼지일 텐데, 이건 또 비누가 썩 반기는 쪽이 아니다. 마루와 루나, 그리고 나는 뭐든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다. 그래서 개인 취향이 분명한 소수를 염두에 둔다면 누구나, 무엇이나 가능한 뷔페는 언제나 옳다.
마침 다니러 온 내 며느리도 동석했다. 인기 코너는 장사진을 이루고 있어 약간의 기다림이 필요했지만, 즐겁게 먹으러 나온 길에 그쯤이야 대수롭지 않았다.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놓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시작은 눈앞의 음식 이야기였다. 뭐가 맛있으니 맛보라는 둥, 뭐는 별로니까 스킵하라는 둥, 뭐는 뭐와 어울리니 함께 먹어보라는 둥, 갖가지 비법과 팁이 오갔다. 허기를 채우고 나니 곧바로 찾아오는 포만감. 마루가 아직 행복한 얼굴로 먹고 있는 루나를 보고 한마디 했다.
“넌 아직 젊구나!”
루나의 대꾸.
“제가 뷔페 맞춤형 인재잖아요! 아무거나 잘 먹는~~”
그 순간 갑자기 수가 진지하게 끼어들었다.
“근데 여기, 김치가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순간 우리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내가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껏 뷔페 차려줬더니 김치가 제일 맛나다고? 그거 금지어(관련 꼭지 알려드려요)아니야?”
다시 웃음꽃 반발.
그다음 화제는 자연스럽게 미로허니들과 내 며느리가 이어갔다. 말이 ‘며느리’지, 분위기는 영락없는 동생이나 조카 한 명 더 앉아 있는 자리였다. 어느새 대화의 주인공은 친구 결혼식에 가고 없는 내 아들. 며느리가 반 농담처럼 남편 이야기를 꺼내자, 여기저기서 그 말을 받아주고 편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준다.
“앞으로 말 안 들으면 우리 모두랑 화상통화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이모, 삼촌 찬스로 며느리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이다. 며느리는 완전 찬성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피붙이냐 아니냐는 이미 의미 없는, 우리의 회식 장면이었다.
축하 자리는 이튿날 오전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이 사들고 왔던 케이크와 마루가 내린 커피가 일요일 우리의 브런치 메뉴였다. 아이들이 아침 일찍 서둘러 올라간 탓에 함께하진 못했지만, 케이크를 맛나게 먹고 난 뒤 빈 접시 인증사진을 공유하며 다시 한번 깔깔깔 웃었다.
문득 스치는 생각. ‘아,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구나.’ 나와 미로허니들의 관계를 넘어, 내 아이들, 특히 며느리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확장된 관계의 포근한 풍경이라니... 어머니나 시어머니의 불편한 동거인들이 아니라, 나이나 세대를 넘어 대등하게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 내가 바라던 ‘선택 가족’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물론 상을 받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 수상을 계기로 우리가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건 그 기쁨과는 또 다른 종류의 값진 선물이다. 이들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혼자 살아낼 방법을 궁리하며, 실행은 하지도 못한 채 세월만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막상 집을 짓고 셰어라이프를 결심했을 때에도, 앞으로 펼쳐질 일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세상의 선입견과 편견에 대한 우려는 결코 작지 않았다.
이쯤 살아 보니 두려움이나 선입견, 편견은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을 때가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걸 알겠다. 몸으로 부딪히고, 가슴이 쿵 내려앉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상처가 나기도 하고, 흉터를 남기기도 하면서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마음속의 그것들은 어느새 대부분 흩어져버린 것 같다. 어쩌면 그것들은 나의 ‘생판 남’들과의 셰어라이프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 일종의 백신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지금의 셰어라이프가 열이라면,
그 일곱이나 여덟의 비중은 바로 미로허니들이다.
내 남은 인생의 동행, ‘생판 남’들에게 감사!!!
『나이 60, 생판 남들과 산다』(1권과 2권으로 엮었습니다)로 제13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읽어주신, 또 읽어주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처음 가보는 60대 이후 길을, 해찰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뚜벅뚜벅 씩씩하고 당당하게 잘 걸어가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앞으로도 부단히 지켜나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기록 또한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지금처럼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