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바꿨다. 이번엔 전기차다. 그동안 대여섯 번쯤 차를 바꿨지만 전기차는 처음이다. 직전에 타던 차가 큰 탓에 기름값이 은근히 부담스러워 언젠가는 작은 전기차로 바꿔야겠다는 마음만 품고 있었다. 출퇴근 운전만 하던 때보다 퇴직 후에 오히려 운행시간이 더 길어진 것도 같은데, 그래도 ‘당장’ 바꿀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누가, 수가 지금 타는 전기차보다 더 큰 차로 바꿀까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가죽 원단이며 작업 도구들을 싣고 다니기엔 지금 차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평소 내가 전기차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비누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언니가 수의 차를 사는 건 어때?”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계획도 없이 갑자기 차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 그리고 그 일은 자연스레 잊혔다.
며칠 뒤, 큰 아이와 통화를 하던 중 우연히 전기차 이야기가 나왔고, 수가 차를 내놓았다는 말까지 흘러갔다.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가 그 차 사드릴게요. 엄마가 타던 차를 저 주세요."
차가 필요하긴 한데 서울은 아직 전기차 인프라가 부족하니 본인은 내연차를 타는 게 더 낫다는 논리. 게다가 처음부터 새 차를 사는 것도 부담이니 익숙한 ‘엄마 차’를 타는 게 훨씬 편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운전 경력 33년 만에, ‘감동 쓰나미’와 함께 전기차가 내게로 왔다.
그런데 사실 큰 아이 못지않은 공신이 있었으니, 바로 수. 사실 중고차라 해도 적지 않은 목돈이 오가는 거래인데, 속사정도 모르는 차를 덜컥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중고차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사야 한다는 기본 상식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예쁜 것’에 사족을 못 쓰는 수의 차는 쨍한 블루 컬러. 수가 이 차를 얼마나 알뜰살뜰, 애지중지 관리하는지 옆에서 쭉 봐왔으니 이만큼 믿을만한 매도자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기계치 아닌가. 궁금한 건 즉각 척척 알려주는 ‘전 주인’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든든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배터리가 완전 방전될 뻔한 내 차를 구제해 주었다. 저녁에 대문 앞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두었는데, 새벽 1시 넘어서 귀가한 수가 내 차에 전조등이 켜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몇 번씩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해도 그날따라 깊은 잠에 빠진 나는 감감무소식. 결국 집 안까지 들어와 방문을 두드렸는데도 기척이 없자 차 키를 가지고 나가 조치를 했단다.
“무단침입을 사죄합니다.”
새벽 2시에 수가 남긴 메시지는 아침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죄라니, 이건 사죄할 일이 아니라 내가 백 번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수의 빠른 판단으로 조치가 이루어졌으니 다음 날 나는 방전된 차 앞에서 ‘멘붕’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무단침입이라면 무한감사할 따름이다.
전기차로 바꾸고 나니 예상대로, 절약되는 기름값이 적지 않다. 마루도 제주로 이주하기 전부터 전기차를 몰고 있어서 미로헌을 지을 때 차고에 전기충전기를 설치했더랬다. 게다가 태양광 전기를 사용하니 예전의 유지비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문제는, 차고에는 두 대를 세울 수 있는데 전기차가 세 대나 되었다는 것. 그렇다면 뭐가 필요하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차고 이용 룰이다. 우리가 누군가. 회의(會議)주의자들 아닌가. 원 포인트 회의 결과, 요일제를 도입했다. 세 명이 돌아가며 주중 이틀씩 차를 바깥에 세우고 일요일은 유연하게. 충전은 각자의 차고 주차일에 맞춰하면 된다. 누구나 예측가능하고 누구나 편리한 주차&충전 방식. 또 하나의 미로헌 루틴이 만들어졌다.
아직 내연차를 타는 루나는 차고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다소 미안한 마음으로 건네는 진반농반의 한 마디.
“루나, 우리에겐 믿을 만한 중고차 마켓이 있잖아.
마루만 다른 차로 갈아타면 그걸 수가 사고,
나는 수 차를 물려받고, 내 차는 루나가 타는 거야.
우리끼린 속속들이 모르는 게 없으니 완전 안심이지.
게다가 애프터서비스는 또 얼마나 확실한데. 수를 봐봐~~
무단침입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 주잖아.ㅋㅋ”
생판 남들과 살다 보니 자동차까지도 물려 쓰고, 돌려쓰는 일이 가능하다.
집은 공유하고, 마음과 손발은 척척 맞고, 차는 순환한다.
이만하면 꽤 정교한 셰어라이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