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간만에 미로허니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 월례회의도 아닌데 모여 밥을 먹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름하여 ‘미로헌 파수꾼을 위한 위로의 밥 한 끼’.
얼마 전, 미로헌에 작은 보수공사가 있었다. 처마 빗물받이를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애초 미로헌 1, 2층 처마에는 빗물받이나 홈통이 없었다. 건축 당시의 트렌드인지, 시공 감독은 “요즘은 물받이를 따로 설치하지 않는다.”며 자연 낙하 방식을 권했고, 우리도 별다른 의심 없이 그 말을 따랐다.
설계사무소 역시 “빗물받이는 부유물이 쌓이면 청소가 어렵고, 홈통이 막히면 역류할 위험이 있다.”며 설치를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았다. 게다가 목구조 주택 특성상 처마에 구조물을 설치할 지지대가 약하다는 것도 현실적인 이유였다.
그런데 살아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처마 전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 구간엔 반드시 빗물받이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2층 베란다 바닥은 평면 목구조 위에 방수를 여러 겹 올리고, 그 위에 페데스탈 공법으로 타일을 얹은 구조다.
문제는 집을 지을 당시, 지금처럼 극단적인 비날씨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올해 제주는, 내가 제주에 들어온 1999년 이래 가장 심각한 날씨를 보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특히 여름과 초가을 사이는 마치 아열대 기후권에 들어간 듯했다. 동남아의 스콜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폭우가 쏟아졌다가 멎고, 또 쏟아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기후 변화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고, 결국 기후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모두가 체감하고 있는 미래다. 그렇기에 대비는 필수였다. 목구조 주택은 순간적 집중호우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쳐 우선 빗물받이와 홈통으로 베란다 평바닥에 떨어지는 빗물량을 줄이기로 했다.
문제는 공사 시기였다. 일정은 당연히 평일로 잡혔다. 수와 루나는 출근, 나는 미룰 수 없는 육지 일정으로 집을 비우게 되었다. 결국 비누와 마루 둘만이 공사 전 과정을 지켜보고 뒷바라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루 이틀이면 좋았겠지만, 보수공사라는 것이 늘 그렇듯 ‘손댄 김에' 보완할 부분이 계속 나오며 일정이 길어졌다. 그 사이 비누와 마루의 개인 일정은 자연스레 취소되거나 미뤄졌다.
크든 작든 집에 공사가 생기면 낯선 사람들이 드나들고, 자재가 들어오게 되어 건축주가 신경 쓰고 챙겨야 할 일들이 은근히 많아진다. 평소 같으면 나라도 있어 ‘백지장이라도 맞들’ 텐데… 이번에는 그 모든 피곤한 노동을 비누와 마루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어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육지에서 돌아온 뒤에도 사나흘은 더 공사가 이어졌다. 내가 돌아왔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함께하지 않았으니 공정도 구조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하시는 분들 간식과 마실 거리 챙기기. 그리고 비누와 마루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별 것 아닌 식사를 준비하는 일 정도였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비누와 마루가 공사 뒷바라지를 도맡게 되는 건 정말 우리 모두가 원치 않는 일이다. 아무리 “주택살이는 몸빵”이라지만, 특정인에게만 그 역할이 고정되기 시작하면 우리가 그토록 경계하는 독박 구조가 되고 만다. 미로헌 파수꾼은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여야 한다.
문제는 이것을 해결하기가 참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처럼 공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정수기나 전자제품 AS처럼 집에 사람이 꼭 있어야 하는 상황은 수시로 생긴다. 그리고 대부분 그 역할은 비누와 마루, 그리고 내가 도맡는다.
민주적으로 공평하게 역할을 분담하자는 데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현실은 일상에서 종종 어긋난다. 직장인 루나에게 매번 휴가를 쓰라 할 수도 없고, 개인 사업자인 수에게 하루 일을 거두고 들어오라 할 수도 없다. 나나 비누나 마루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어쩐담… 생판 남남끼리 살면서 제일 어려운 숙제에 봉착한 느낌이다. 물론 비누와 마루는 “사정이 허락하는 사람이 하는 것일 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이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공사 과정에서 빚어지는 자잘한 갈등을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짐을 나누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작지 않다. 그런데 이 마음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수는 “다음 주 일요일 점심은 제가 쏠게요” 하고 나섰다.
어제의 회식은 공금으로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루나가 계산을 해버렸다. 만류하는 언니 오빠들에게 루나가 한 마디.
“밥이라도 사게 해 주세요!”
매번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현실,
아직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앞으로도 아마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이 들어 바깥활동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면 몰라도.
그래도 분명하게 확인된 것은 있다.
모두들 이 상황을 ‘나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독박'을 씌워서는 우리의 '생판 남들과의 삶'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모두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
그래, 일단 그럼 됐어.
그 마음 아끼면 똥 되는 거 알지?
한 끼 밥이라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