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갖고 싶다

by 조선희


30년도 더 전에 운전면허를 따고 곧장 차를 샀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가려면 차가 절실했다. 마침 그즈음 친정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차는 더더욱 필요했다. 병원은 다른 형제가 모셨지만, 잠깐씩이라도 볼 일이 생기면 당시 논술학원을 운영하던 내가 움직이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과천의 단독주택에 살 때였다. 새 차를 샀지만 세워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 시절엔 다들 골목길에 차를 댔다. 일찍 들어오면 대문 가까이 세울 수 있었지만, 늦게 돌아오면 몇 블록을 헤매야 했다. 아마 그 무렵부터 주택가 골목길의 주차 시비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논술학원은 늘 자정 무렵 끝났다. 고등학생들이 ‘야자’를 마치고 와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주차 전쟁 속에서 문득, 내가 차에 붙잡혀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금, 보험료, 정기 점검, 세차… 차를 소유한 게 아니라, 차가 나를 소유해 가는 기분이었다. 새 차가 긁힐까 전전긍긍했고, 주차공간을 찾아 골목길을 헤매며 ‘괜히 샀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잠깐의 편리함을 얻는 대신, 나는 지독히 무거운 족쇄를 찬 셈이었다.




세월이 흘러 코로나 팬데믹이 닥쳤다. 외출은 막히고, 재택근무가 이어지면서 한동안 출퇴근도 사라졌다. 말을 나누고 밥을 먹을 가족이 없는 ‘혼삶’, 나는 그야말로 집에 갇혔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일상이었다.


테라스에 화분을 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어떤 경우에도 살아있는 그 무엇도 기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걸 지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풀꽃들이 주는 작은 위안이 절실했다.


화분 몇 개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테라스는 곧 작은 화원이 되었고, 작은 화원은 세상을 대신해 주었다. 흙을 만지고 새 잎이 돋는 걸 보는 일은 그저 기쁨이었다. 아침이면 눈을 맞추는 풀꽃들은 잠에서 깨어난 갓난아기처럼 예뻤다. 고립의 시간, 화분을 돌보는 일은 곧 ‘정신적 생존’ 프로젝트나 다름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라스는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행잉 화분을 매달고, 마침내는 뻘이 가득 담긴 연꽃 화분까지 들였다. 화분이 불어나자 그만큼 내 손길은 분주해졌다. 그들 하나하나가 내게 생명을 의탁하고 있는 환자들처럼 생각되었다. 물 주기를 거른 날엔 미안했고, 잎이 마르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식물이 내게 주던 위안은 이내 부담의 다른 이름이 되어갔다. 화분을 돌보는 일은 점점 강박으로 바뀌었다. 햇살에 지쳐가는 화분들을 위해 테라스 전면에 강관 프레임을 세우고 대나무 발을 드리웠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람이 불면 걷었다가, 멈추면 다시 치는 ‘노가다’의 반복. 차에 이어 다시 만난 족쇄였다.




팬데믹의 끝자락, 나는 생판 남들과 함께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마당이 생겼다. 날마다 들여다볼 풀꽃과 소소한 꽃나무들, 듬직한 사철나무들이 생겼다. 비누와 서로 도와가며 마당을 돌보는 일은 즐거웠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꽃 피우는 사람 따로, 꽃놀이하는 사람 따로, 얼씨구!)


올봄 어느 날부터 대문 앞의 올리브나무가 시들기 시작했다. 미로헌의 상징 같은 나무였다. 지나는 사람마다 “어찌 이렇게 잘 키웠냐”며 감탄하곤 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그보다 앞서 호주 티트리도 한 번 위험했다. 지난해 겨울이 깊어가던 어느 날, 잎이 바짝 말라갔다. 죽었구나 싶었는데, 비누가 속단하긴 이르다며, 줄기를 잘라보더니 기다려보자 했다. 봄이 다 지나갈 무렵, 연둣빛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기적처럼 살아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올리브였다.


게다가 그 두 번의 사건 모두 비누가 집을 비웠을 때 벌어졌다. 비누가 1년에 한두 번 오랫동안 집을 비우면, 마당일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그건 전혀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내 부재 때는 비누가 대신하니까.


올리브가 정신 못 차리고 시들어가는 동안 나는 극도로 불안하고 불편했다. 티트리 때는 갑자기 기온이 내려갔던 초겨울이 문제였고, 이번엔 5월의 갑작스러운 더위에 물 주기를 이틀 건너뛴 게 마음에 걸렸다. 결국 내 보살핌이 모자라 생긴 일처럼 느껴져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마치 내가 이 나무들을 키우고 돌보는 게 아니라, 이 나무들이 나를 길들이는 것만 같았다.




이제 곧 겨울이다.
올리브는 아직 회복의 기미가 안 보인다.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가슴에 꽂히는 요즘이다.
아, 이제 그만 가져야겠다.
짧은 순간의 즐거움과 기쁨을
그 무거운 책임과 바꾸기에는 이제 나도 철이 들만큼 들었다.
소유의 대가는 끝없이 체력과 마음을 갈아 넣는 일이다.
이른바 ‘영끌’과 ‘노가다’의 연속이다.

이제 그만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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