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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 작가 Nov 25. 2022

책을 읽는 것에 대하여

[여름의 끝자락에서 바람도 밀어내지 못하는 구름이 있다]. 정여민 시인의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 까요?]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나도 시간의 문을 닫은 채, 그곳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구름 속에 잠식해있으나 비가 되어 떨어질 수는 없는 어둠 속에 갇혀 있던 4월. 거짓말처럼 북클럽을 하기로 했다. 봄 한소끔 그러모아 The April Bookclub을 시작하였다.     


많은 일이 있었고, 아직 살아있다. 무너져 내리는 건 순간이다. 주체할 수 없고, 그저 무너져 내린다. 숨을 쉴 수 없던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겁이 난다. 왜 이리 사는 게 피곤하고 지겨울까. 내가 원하는 나와 세상이 원하는 나가 너무나도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북클럽을 시작하던 때의 일상이었다.     


우리는 모두 가족, 친구, 연인 안에 있어도, 자신만의 아픔을 어찌하지 못한다. 마음의 아픔을 지고, 살아간다. 앞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아직 살아있어요.”라고 말하며 사는 게 참 대수인 삶을 살아낼 것이라는 거다.     


박연준 시인의 [쓰는 기분]을 보면 꼭 내 이야기만 같은 글들이 이어진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텔레비전을 몇 시간 동안 내리 보고, 짜고 현란하고 시끄러운 감각을 몸속에 내리 넣은 날에는 영혼의 결이 달라져 있다. 두껍고 탁하고 냄새나고 건조하다]. 그러나 같은 행동에도 각기 다른 이유가 있다.     


비방과 비난이 난무하는 곳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지만, 마음속은 수없이 떨어져 나가고, 흘러내렸다. 결국 스스로 밟혀도 되는 존재가 되도록 놓아버렸다. 회사에 나가기 전날이면 잠이 쉬이 오지 않고, 이 마음이 언제쯤 증발하는지 보라는 냥으로 베개를 적시는 일이 반복됐다. 그래서 일상이 무의미하게 흘러가게 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가정, 연인, 회사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절망했다.    

 

절망이 더 이상의 절망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용기. 그래서 일단 책을 향해 걷기로 했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지금을 견디며 누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덧없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내 곁에 있어 줄 것을 찾고 싶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책을 고르고 글을 읽어 마음에 넣은 뒤, 서로의 가슴에 부드러운 어루만짐을 넣어주는 북클럽이었다.     


호기롭게 북클럽을 시작했으나, 책을 손에 잡지 않은 날들이 긴 만큼, 읽기는커녕 도서를 고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일종의 [언플래트닝]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좋아하는 마음을 내어주니 책을 고르는 힘이 세졌다. 그리고 문장, 문단, 단락, 책의 의미를 바라보는 힘도 성장했다. 글과 함께 내 생각도 과감하게 적고, 마음에 제동이 걸렸던 문장들을 한데 정리하여 글로 표현하는 일로 이어졌다.     


내가 무언가를 즐기면서 한 적이 있나? 책을 고르고, 읽고, 쓰는 고단한 작업이 그동안 갖추지 못했던 내 인생 최대한의 예의 같았다. 마치 매일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북클럽은 단순한 글 읽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만드는 자양분을 끊임없이 만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스스로 찾아 해낸 이 행위들이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책을 읽으니 쓰고 싶어지는 일들로 이어졌고, 곧 책도 출간할 예정이다. 절망으로 몰아가는 어둠 속에서도 싹을 트고 줄기를 뻗을 용기. 그런 용기를 나는 독서 모임을 통해 얻었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공격에 싸울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될 곳이 생겼다. 현실은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더 불합리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성장을 하고 내면을 치유하여 나의 길을 갈 힘이 생겼다.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책 속에는 장군이라는 개가 등장한다. 장군이는 추운 밤을 지내고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나 이 모진 세상을 받아들인다. 사느라 힘들이고 애쓴 만큼 세상살이가 쉬워지면 좋으련만, 오히려 반대일 때가 많다. 생각할수록 깊어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저 나는 나대로의 길을 걷는다. 그 바람에 내 마음의 구름이 실려 지나가리라 믿는다.     


+ 피곤해도, 귀찮아도 조금이라도 읽으려고 작은 불빛을 낸다. '지금 이게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며 읽어 내려간다. 오늘은 이쯤에서 멈추자 하며 책을 덮는다. 오늘 할 일 다 했다는 자기기만을 가지고 자리에 눕는다. 알게 된다. 짧은 시간이 나를 바꾸었음을. 책을 읽으면 글감과 생각이 굴러간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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