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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 작가 Jul 23. 2023

덜컥 폐가를 샀습니다.

        

인터넷 부동산에서 매물을 보고 연락을 하니 주소를 알려주었다. 오래되고 낡은 집을 대하는 마음은 비슷하다. 보통 부동산에 전화를 하면 공인중개사와 함께 집을 방문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집들이 꽤 된다. 그들의 세계에서도 버려진 것 같은 처지에 있는 집들이 있다.      


대지 49평, 주택은 20평 정도. 인터넷에서는 1984년에 지어진 집으로 토지 및 건물이 모두 등기가 나 있었다. 도로 옆 집은 아니지만 대각선으로 공용주차장도 있고, 창고 두 동은 시멘트 골조이고, 한 채는 한옥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재래식 화장실이 바깥에 있지만, 안에 칸이 나뉜 곳에 화장실을 만들고, 부엌 자리도 있어서 구조변경도 할 필요가 없었다. 내 마음 뉘일 곳에 그만한 집이 없다 싶었다.


처음부터 내 마음이 그러했던 건 아니었다. 대지 100평 정도의 시골 고택을 고쳐 생활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 고택을 살폈었는데 그런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시골도 도시도 아닌 주택가의 집을 샀다.


그래도 같은 마음은 오래된 집에 있었다. 부수고 허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살리고 싶었다. 본연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집을 만나고 싶은 것엔 변함이 없었다.


이때 오래된 집이 할 일은 하나다. 바로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가능할지 생각해 본다. 구조보강을 하고, 지붕의 슬레이트를 철거하고 앞부분 지붕을 보강하여 내가 원하는 창을 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더 나아가 내부는 벽지가 아닌 페인트로 칠하고, 주방시설, 욕실을 하면 대략적인 집의 형태를 갖출 것이다. 시름시름 아프기는 해도 다시 또 툴툴 털어내고 일어날 노장만의 기운이 느껴지는 집. 이전에 인터넷으로 봤던 집 구조와 비슷해서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됐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무슨 생각으로 안인지 밖인지 모를 그 집을 마음에 품었을까?      

집을 다시 가서 다. 그리고 도저히 혼자서는 갈 엄두가 나지 않는 그 집을 계약하기로 마음먹었다. 홀린 듯 부동산에 약속을 잡고 찾아갔다.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두 명인데, 전화 통화한 이는 여자이고, 대면으로 설명해 주는 이는 남자였다. 짧게 줄여 남부(남자 부동산 공인중개사)라고 부르겠다. 남부는 제법 친절히 지적도를 보여주며 설명한다.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그래서 전화해 보니 집에 아직 안 가봤다며 기다려보란다.      


그리고 열흘이 지났다. 연락이 없다. 다시 전화를 하니 이번에는 여자 공인중개인이 전화를 받는다. 집주인이 다시 가격을 올렸다고 한다. 남부에게 전화하라고 한단다. 한참 뒤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살 수 있단다. 그리고 계약 이야기가 아닌 수리 견적을 봤다며 지붕, 새시, 주방, 욕실, 외부페인트 수리를 하는데 이천오백만 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면서 리모델링 업자와 계약을 하잔다. 우선 집부터 계약을 하겠다고 했더니 계약금을 이백만 원을 부치란다(전에는 백만 원이라고 했잖아요......). 알겠다고 계약서에 집주소, 집 매매 가격, 계약금을 기재해서 문자 보내 달라고 했더니 하루가 지나도 연락이 없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야 나는 그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친절했던 공인중개사는 부동산 복비를 백만 원 요구했다(원래는 십오만 원 정도). 매도인 희망 가격에서 백만 원을 깎아 자신의 복비로 만들기 위해 서로의 애를 태우는 시간을 한 달로 잡은 것이다.

매도인이 복비를 내지 않는다고 하며 나보고 다 내라고 하기 시작하더니 그게 얼마냐고 했더니 백만 원이라며, 집을 고치는 사람도 싸게 알아봐 줬지 않냐며 계약도 전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부동산 중개인들의 행태를 고발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말로만 듣던 일을 당하게 되니 헛웃음이 났다. 부동산 복비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았다. 매도가 및 계약금에 대한 내용을 보내야 송금할 수 있다고 하자, 돈을 부쳐야 보내준다며 백만 원을 부치라고 했다. 점점 찝찝함이 가중된다. 한 달 동안 내가 연락하기 전에 일체 연락을 하지 않던 사람이 하루에만 다섯 번 이상을 전화했다. 백만 원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자, 눈에 흰자가 번뜩이는 게 전화선 너머로도 보인다.      


매도인에게 계약금을 송금하고 한 시간 반이 지났는데, 이번에는 매도인이 계약금을 받지 못했다며 연락이 왔다. 그래서 캡쳐본과 매도인의 계좌 및 은행을 다시 공지했다. 신협을 알려주고선 농협 계좌를 확인하는 매도인이나 이에 친절하게 역으로 알려주는 나나, 이건 도무지 알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처음 연락이 잘 안 됐을 때는 친구(이하 달이)는 논산은 사람들이 좀 여유로운가?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한 달 이상 이어진 뒤 달이의 마음은 거칠어졌다. 열불을 토해내는 용처럼.      


잔금은 일주일 뒤 토요일 오전 11시 30분에 만나서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이곳을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고 했다. 견디기 힘들 때 훌쩍 그곳에 가서 괜찮다고 토닥임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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