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오 작가 Aug 02. 2023

2000만 원으로 주택을 살린다면

견적은 얼마나 나올까요

          

집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보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보듯이. J는 왜 주변에서 말리는 친구 하나 없었는지 안타깝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집을 다 고친다고 그 사람 눈에 나를 향한 경외심이나 집에 대한 환희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저는 이 집을 화려하게, 있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 건강하게 만드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니까요.     

 



땅을 구매해서 집을 짓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새로 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치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바라는 건 오래된 집이었다. 집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깨우고 싶었다. 집이 가지고 있는 그대로를 살려주고 싶었다. 오래된 구옥을 좋아한다. 바라보는 것에서 이제 그 안에 있고 싶어졌다.  

    

집은 곧 임종을 앞두고 옅은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장기를 교체해서 숨을 돌려놓는 일이 시급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은 정화조, 수도, 전기, 지붕 수리와 같은 기본적이면서 큰 공사가 필요했다.       


시작부터 無에서 출발했던 논산집(해월가)은 고치는 데 드는 돈을 만들기가 많이 벅찼다. 예산은 이천만 원. 충분한 예산을 가지고 움직여야 된다고 하는데, 최선이라는 게 없는 출발선에 있었다. 어느 곳에서도 그 돈으로 견적이 가능하다고 하는 업체는 없었다. 그래서 돈을 적게 들일 요량으로 SG(숨은 고수를 찾는 사이트)에 현재 형편을 이야기했다.         

  

내용은 이러하다.

“빈집으로 있은 지 오래됐습니다. 우선 집이 무너지지 않을지 구조를 확인해서 보강을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엌 쪽 지붕에서 물이 새는 것이 확인되는데, 지붕을 살릴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외 부엌에는 타일을 해야 하고, 욕실은 자리는 있으나 변기, 세면대를 새로 해야 합니다. 그 외 외부페인트 및 옥상 방수 작업, 전기 해야 합니다. 현재 돈이 없는 관계로 이천만 원대가 한계입니다. 견적 후 공사착공한 뒤 금액을 올린다고 해도 드릴 돈이 없으니, 이를 감안해 연락 바랍니다. 환골탈태가 아닌 집을 쓸 수 있게 고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리고 만난 사람들은 캐드로 도면을 그려가며 보는 것은 고사하고 단점만 늘어놓는 바람들 뿐이었다.  

    

그중 A는 전주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데, 유월부터 논산에 작업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함께 하면 된단다. 그리고 홈페이지에서 이전 작업한 것들을 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가격을 맞춰 줄 수 있다고 해서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오전 10시 집을 둘러본 A는 “지붕 해야겠는데요?”를 시작으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이 집은 구조보강은 안 해도 되겠어요. 그런데 지붕은 새로 해야 돼요. 단열 안 되는 지붕으로 강판을 덧붙이는 건데 육백만 원입니다. 폐기물은 암롤해서 나가면 되니까 75만 원입니다. 이외에 전기, 수도 배관, 욕실, 부엌, 전실 확장 및 샷시, 조립식 판넬이 들어가야 됩니다. 복도에는 문 3개, 창문 3개를 넣을 거예요. 제가 인터넷에 올린 거 찾아보고 비슷한 거 이야기해 주세요.” (가져온 태블릿은 켜지지도 않는다)

폰으로 찾아본 사진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찌 됐든 이천만 원 공사비는 나온다고 하니 견디자.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가격이 오른다. 그리고 견적내용은 줄었다.            

       

도배, 바닥, 싱크대, 페인트, 보일러, 조명, 창고, 오수, 상수도 모두 빠졌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여기보다 비싼 곳만 있다는 것을. 유튜브로 오래된 집을 고친 사례를 보면 싸게 셀프리모델링을 해도 3천만 원이다. 그런데 대수선 수준의 공사를 하는데 이 정도면 비싸지 않은 금액이라는 걸 몰랐다. 그런데 나는 A와 함께 하지 않기로 했다. A는 통화할 땐 있는 돈 내에서 하는 거지 빚내서 하면 안 되다고 하더니 막상 얼굴을 보더니 많은 부분이 달랐다. 나는 여전히 사람의 태도를 중시하고 그것에 좌지우지한다. 아직은 그런 나를 애정하고 싶다. 폐가에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여자 둘이 서 있으니 눈빛이 바뀌는 게 보인다. 그냥 믿을 수 있는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그냥이요). 다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나는 아직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당연히 A와는 계약을 하지 않았다.      


견적을 보고 났더니, 무언가를 하려면 하는 이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금 되새긴다. 집을 고치는 방향을 정해야 한다. 집에 대한 그림이 있어야 업체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 핀터레스트에서 내가 그리는 방향과 같은 사진들을 모았다. 모일 때는 어지럽지만 한숨 자고 나면 어느샌가 나의 방향과 맞닿는 그림 몇 개가 추려지기도 한다.


출처.핀터레스트




      

다음으로 연락 온 B는 사진을 보더니 이전에 이 집에 가서 견적을 본 적이 있단다. 자신은 시간이 안되지만 업자에게 750만 원 선에 맞추서 해달라고 하란다. 이 집을 본 적 있다고? 이게 무슨 말인가? 연락을 취했다. 한두 달 전에 가서 견적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창고를 철거하고 전체 리모델링을 추진한다고 했었단다. 대전 유성에 산다며 집 견적을 봤고, 이후로 연락이 없어 다른 업자에게 공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계약이 불발된 거다. 견적만 보고 팽 당했다고 생각하여 괘씸하던 차에 사진을 본 B이 회심의 답장을 날린 것이었다.


B가 생각하기로는 보일러 전기 배선을 하고, 복도 뜯어내고, 전실 높이를 맞춰서 집을 해야 한단다. 욕실, 주방은 새로 해야 한단다. 기와는 물 새는 대만 보수하고 그대로 쓰란다. 그렇게 해서 우선 사람이 살 정도로 만들어놓고 차후는 차근차근 고쳐나가라고 했다. 한 번에 고치려고 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거다. 내 생각과 일치했다. 일정보고 연락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여러 번 연락을 해서 날짜를 맞췄다. 철거비 가격이 70만 원에서 390만 원으로 뛴다. 집을 보고 전기, 수도와 같은 내부적인 상태를 파악하는 능력은 있었으나, 우선 철거부터 하고 나머지를 이야기하잔다. 그러더니 돈 없으니 열심히 둘이서 벽지 뜯고 해 보란다. 저건 정말 비웃음이다. 누가 봐도 비웃음을 흘리더니 사라진다.       


빈집 지원 사업이 많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알아본 바는 없었다. 연락을 준다며 연락처를 받아 적은 사람들은 분명 친절했었는데. 뒤돌아서면 잊었다.      


해도 해도 안되니 부동산 중개인이 소개해준다던 H한테로 관심이 간다. 그만큼 애달아 있었다. 그런데 번호를 알려달라고 해도 알려주지 않는다. 몇 번 물어 알게 된 연락처로 전화했는데 안 받는다. 늦게 통화가 됐다(이쯤 하면 나도 그만둬야 했는데......). 이미 견적을 봤다고 하니, 견적서를 받기로 하고 문자로 메일 주소를 보냈지만 또 연락이 없다. 그러더니 만나서 이야기하잔다. 다시 논산집이다. 애초에 말했던 2500만 원은 어디 가고 5000만 원이 넘게 든단다. 허탈하다. 그리고 허기진다. 꾸질꾸질한 상태로 주차할 곳이 없어서 몇 바퀴를 빙빙 돌다가 겨우겨우 음식점에 들어가서 입에 넣는다. 정말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냐.     



 

집에 왔다.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놀다가 씻고, 밥 먹고 숙제한다. 피아노 앞에 앉은 아이의 손가락과 음을 듣는데 마음이 이상하다. 색칠 놀이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들이 잠든다. 나는 어둠 속에서 웹툰 [나의 작은 서점]을 본다. 읽다가 알게 된다. 내가 무얼 하려는 건지. 그렇다. 집을 계약하고 리모델링을 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쉬어갈 수 있으면, 나도 당신도 그리할 수 있으면 되는 그런 곳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운이 빠진다. 그런 내가 싫지 않다. 너무 힘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서점에 대해 생각한다. 세 평 남짓한 공간에 서점이 가당키나 하겠냐고 한다면 나는 가능하다고 하겠다. 그 정도가 나에게 맞다고,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쉴 수 있는 공간에 아이스크림 쪽쪽 먹으며 책을 넘겨 볼 수 있는 곳이면 그걸로 됐다고.


출처 핀터레스트


매거진의 이전글 빈집을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