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by 김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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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초반을 읽고, ‘글을 잘 만지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 책도 초반부터 끌어당기는 힘이 강해 매료될 수밖에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압도적인 작품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원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이든 드라마든 처음에 강렬함도 중요하지만 이끌어가는 힘이 더 중요하다. 이 책은 잘 읽히고,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지나치게 다 좋은 점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몇 주 머물다 가는 날 위해 귀한 주말 시간에 긴 산책을 함께해주고, 아늑한 홈파티에 한 자리를 내어준 분들의 환대가 얼마나 깊은 마음에서 나왔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감사하게 되었다. 그분들께 안부를 전하고 싶다. 내가 아는 뉴욕 사람들, 이제는 뉴욕에 없는 뉴욕 사람들에게. 역시 사랑스럽다. 인생 최고의 소풍이었다.] 작가의 시선을 알 수 있는 문장이다.


여행한 곳마다 각각의 색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같은 곳을 간 것처럼 다 좋았다는 결론이 현실이 아닌 판타지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그런데 또 그 지나친 밝음이 다시 필요한 자양분으로 왔다. 역설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공간이 현실을 마주하게 했다. 근사하다가 씁쓸해졌다를 반복했다. [인생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초췌하게 얼어 있던 나를 다정히 포옹해주어, 긴장과 두려움과 피로가 씻겨나갔고 그렇게 얻은 용기로] 세상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싹이 고개를 내밀게 해 준다. 나는 부정의 단어로 나아가고, 작가는 부정도 최대한 긍정 단어의 언저리에서 찾았다. 생소한 단어를 적재적소에 잘 섞어 우려내고, 다독하고 성장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계가 얼마나 크게 변하는지, 나쁜 쪽으로 변할 수 있다면 좋은 쪽으로도 변할 수 있기를 늘 바랄 뿐이다] 작가는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구나. 나는 온통 부정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채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면 확실히 무리하게 된다]라니. 나는 누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좋아한다고 매달려주기만 바라고, 무리는커녕 제지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 삶인데.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진 세상이지만,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 분명 더 행복하지 않을까?]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길러준다.


얼마 전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에세이 형식이지만, 자체 검열 속에서 무뎌지다 못해 더 이상 칼의 역할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글을 매만지고 있는데, 작가는 고백을 통해 [놀라움과 해방감을 느꼈다. 말해도 되는구나. 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약한 부분을 햇볕 아래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라니. 내가 쓰는 글이 무슨 시사포럼도 아니고, 알 수 없는 자체 검열을 그리도 해서 살을 모조리 파먹고 있는지.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표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아프니까]. [내가 쓰는 언어의 요철을 없애면서도 예각을 잃지 않는 것]. 그 중용의 힘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


둘째가 찾아오고, 봄의 먼지처럼 공황이 왔다. 숨을 쉬지 못해서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는 게 낫겠다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공황이 오기 전의 신체증상(목이 아프고, 감기 증상)을 알아차리는 작업이 이어졌다. 공황 약을 먹지 않아도, 신체 증상을 미리 조절하고 호흡을 하면서 나름 잘 이겨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할 운명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니까.


신체와 정신의 호흡을 위해 베란다에는 식물이 많다. 화분, 흙을 사다가 거기에 씨앗부터 심는다. 물을 주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식물들이 올라온다. 올해 5월부터 집안에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서 계속 피어났는데, 그만큼 식물들도 죽어갔다.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도 잘 지내던 식물들이 전염병에 걸린 것 마냥 다 죽어갔다. [느슨한 동행이 있어 한층 즐거웠다]. 그러다가 소강된 상태, 용암의 불이 덮여 있는 휴지기에 이르자, 식물들이 다시 살아났다. 신기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식물들을 좀 더 자주 보게 된다. 식물들도 다 느끼고 있구나. [화분에 새잎이 나면 기분 좋은 충격을 받는다]. 충격까지는 아니어도, 이 기분 좋음을 만끽할 필요가 있다. 식물들이 나에게 위로를 준다. [경이를 경이로 인식할 수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질 것이다. 덧없이 사라진다 해도 완벽하게 근사한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


[폭력이 근사하게 나아갔던 것들을 하루아침에 뒤로 돌려버린다는 사실을 몇 년에 걸쳐 알게 되었다.] 가해자들이 휘두르는 횡포는 이미 결론이 나 있다. 휴일이 끝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뒤로 물러나 버린다. <어느 독일인의 삶>에서처럼 삐뚤어진 생각을 갖은 사람이 무고한 사람을 얼마나 죽일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조금만 경계를 낮추면 악의는 습기 높은 계절의 곰팡이처럼 기세를 떨치며 확산하고 지우기 어려운 얼룩을 남긴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내 삶을 매도하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잘 지내는 것 같을 때면 무참히 폭격을 해온다. 그들과 싸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버티는 것도 힘들다면,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다. 내 운명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가혹하게 내몰 필요가 있나 싶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기댄 채, 지나치게 좌절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마음속의 저울이 잘 작동하는 사람들과만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마음속의 저울은 옳고 그름, 유해함과 무해함, 폭력과 존중을 가늠한다. 그것이 망가진 사람들은 끝없이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사실 이미 고장 난 타인의 저울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저 내 저울의 눈금 위로 바늘이 잘 작동하는지 공들여 점검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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