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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Jun 25. 2024

New York Times

Part 1. 출입처_On The Record

가장 뿌듯할 줄 알았던 방문이

가장 창피한 방문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는 뉴욕 타임스 현직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전까지 질문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나는 교수님으로부터 "OO은 조금만 더 스스로를 표현했으면 좋겠어요."하는 조언을 들었다. 경청 모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심과 드디어 내 관심 분야인 언론과 직결된 꿈의 장소에 발을 들였다는 기쁨이 뒤섞였다. 질의응답 시간에 누구보다 빠르게 손을 든 사람은 나였다. 


하지만 내가 던질 질문은 터무니없었다. 뉴욕타임스 건물 로비에는 미디어 아트가 있었다. 그 작품에는 많은 글자가 떠 있었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여쭈었다. 기자분들은 조금 당황하다가 뉴욕 타임스 기자들이 기자회견에서 공인에게 던진 질문들을 아카이빙한 작품임을 대답했다. 


나는 내 질문이 ‘운을 띄울 수 있었던’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 수 있었던’ 질문이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뿌듯해하고, 이어 다음 질문을 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든 상태였다. 교수님께서는 가능하면 모든 학생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발언권을 다른 학생들에게 넘기셨다. 


친구들은 정말로 궁금한 내용을 물었다. 뉴욕 타임스가 어떻게 디지털 시대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뉴욕 타임스 기자들은 어떻게 기사 아이템을 찾아내는지, 거짓 선동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뉴욕 타임스 기자들은 어떻게 진실을 전달하려고 하는지에 관한 질의응답이 열띠게 오고 갔다.


그제야 나는 내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중요하고 특별한 자리에서 내게 주어지는 질문의 기회는 단 한 번뿐인 것이다. 나는 그 질문의 기회를 소중히 여겼어야 했고, 신중하게 ‘내가 꼭 묻고 싶은 하나의 질문’을 상대에게 던졌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다음 질문의 기회가 또 찾아오겠지’하는 방자한 태도로 내게 주어진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허공을 애처롭게 떠돈 내 손이 끝내 책상에 안착하지 못한 채 대담의 시간은 끝나버렸다. 

나는 정작 내가 진짜로 알고 싶었던 내용, 이를테면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의 사람도 기자가 될 수 있는지, 인터뷰할 때 상대에 공격적인 질문을 어떻게 던지는지, 기사를 작성할 때 꼭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다. 


이대로 뉴욕타임스 건물 밖으로 나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나는 황급히 세미나룸을 떠나려는 한 기자분을 붙잡고 혹시 못다 한 질문을 해도 되냐고 간청했다. 다행히 기자분께서는 내 질문을 반기시면서 자세하게 답변해주셨다. 


교수님께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게 “OO아, 하고 싶은 질문 했니? 너한테 가장 중요하고, 네가 진짜로 하고 싶은 질문을 해야 해. 알았지?” 하며 나를 타박하셨다. 교수님께서 내게 전하려는 뜻이 무엇인지 나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얼굴이 부끄러움과 후회로 새빨개졌다.

얌전히 나의 잘못을 수긍하면 될 것을, 나의 실책을 어떻게든 무마하고 싶었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나는 나중에 기자분께 나머지 질문을 하는데 성공했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그 기자분이 친절하셨으니까 질문을 받아주신 거지. 아니었다면 질문의 답을 듣지 못했을 거야"며 다시금 팩트로 내 마음에 비수를 꽂으셨다. 


지당하신 말씀이었다. 내가 굉장히 운이 좋았을 뿐, 평소라면 ‘한 번 더’의 기회는 내게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의 뭉툭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래도 뉴욕타임스의 속쓰린 경험 이후 나는 질문이 지닌 무게와 가치를 인지하게 되었고, 질문을 ‘막’이 아닌 ‘잘’ 던지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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