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친구가 내게 'Rushing' 상태라고 말했다. 내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상황보다 '병명'이 정확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스몰토킹을 하며 머리를 비웠다. 대화를 하고 싶었다. 혼자 있으면 고민 때문에 머리가 무거워진다.
원하는 대로 사람들을 만났는데도 또 갑자기 젊음을, 이 하루를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기운 내라는 선의에서 엄마가 바샤 커피에 오트 밀크를 부어서 라테를 만들어줬다. 친구에게 '인생 노잼 시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법 진지하게 물으니 친구가 장문의 리스트를 보내줬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살찔까봐 걱정되었지만 혼자 집에서 우울한 상태에 빠지기 싫어서 엄마 아빠를 따라 나갔다. 동네에 맛있는 곱창전골집이 생겼다. 아빠는 곱창을 내 접시에 계속 수북하게 덜어줬다. 우동사리에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아빠는 간만의 외식에 성공했다고 뿌듯해하셨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우리 가족은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시그니처 라테를 사먹었다. 비대면 회의를 하러 가는 딸의 손에 맛있는 커피는 후식으로 쥐여 줘야 한다는 엄마아빠의 지론이었다. 날씨가 좋았다. 매미 소리가 우렁찼다. 커피는 달콤했다. 기분이 더 좋아졌다.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가벼우면 되는데 나는 왜 무거움을 자초할까.
회의를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유능했다. 고민했던 모든 것들을 순탄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회의였다. 회의 마치고 한 '수고하셨습니다'는 말에 진심이 담겼다. 흔치 않은 일이다. 벌써 다음 모임이 기대된다.
오늘의 일을 나열한 뻔하디 뻔한 일기다. 문장은 평이하고 묘사는 형편없다. 그치만, 뻔한 일기라고 했지 나쁜 일기라고는 말 안했다. 이런 일기가 내겐 많이 필요하다. 오늘의 일을 담담히 얘기하면 되는 이 하루, 뻔한 글도 거리낌 없이 써낼 수 있는 이 하루가 지금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