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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Aug 18. 2024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인사이드 아웃2>가 개봉하면서 '불안'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I'm not good enough' 불안해하는 라일리의 마음에는 'I should be good enough', 즉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깔려 있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한 경우, 완벽하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한 경우, 이 두 가지 경우 중 더 고통스러운 것은 후자가 아닐까 싶다. 전자의 경우 남과의 비교가 원인이기 때문에 남에 대한 스위치를 꺼버리면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완벽한 나라는 이미지가 원인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아닌 나와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  '불안한 완벽주의자'에게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고, 불안을 다스릴 방법을 알려주는 심리학 저서가 바로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이다. 이 책은 불안과 완벽주의의 잔가지를 쳐내는 것에 그치는 유튜브 자기계발 동영상과 달리, 불안과 완벽주의의 줄기를 차근차근 더듬어감으로써 마침내 그것의 깊숙한 뿌리를 뽑아내도록 독자들을 돕는다.


완벽주의자는 자주 불안, 스트레스, 걱정 같은 ‘불쾌한 느낌’과 싸운다. 완벽한 저녁식사 장소를 정하기만 하면, 완벽한 휴가 계획을 세우기만 하면 더 이상 불편한 느낌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부정적인 느낌은 계속 찾아온다. 우리는 느낌에게 공간을 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느낌이 어느 정도의 크기로 얼마만큼 머물다 갈지 정하고, 그 사이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불편한 느낌. 밥을 먹으면. 많이 먹어도, 조금 먹어도, 배가 불러오는 느낌을 싫어한다. 뱃살이 늘어나는 느낌. 바지가 꽉 끼이는 느낌을 싫어한다. 너무 불쾌하다. 살이 뒤룩뒤룩 찌는 느낌이다. 몸무게가 늘어나는 느낌. 배에 돌덩이를 쑤셔넣은 느낌. 배가 축 늘어지는 느낌. ‘뚱뚱해지는 것 같아서’ 불쾌하다. 배가 가볍기를 바란다. 가벼운 배에 집착해서 아무것도 먹지 않거나 먹어도 먹은 것처럼 느껴지지가 않는음식만 먹는다. 이 불편한 느낌을 치워버리고 싶어서 밥을 먹자마자 가족과 친구 몰래 가족 몰래 소화제를 삼킨다. 결국 내가 내 식이장애를 극복하는 것은 이 '불편한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내 문장이 형편없는 느낌. 매번 발전 없이 공장처럼 수준 낮은 글만 찍어내는 것 같은 느낌. 똑같은 단어, 똑같은 표현, 똑같은 문장. 내가 쓰는 문장을 혐오하게 된다. 이 글이 어떻게 잘 쓴 글이 될 수가 있어. 불편한 느낌이 글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다. 내가 내 글을 증오하는 마음 또한 불편하기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한다. 내 문장을 쓰는 대신 남의 문장을 옮겨적는 까닭은, 남이 쓴 좋은 문장을 흡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문장을 흡수하기만 할 뿐 내 문장에 적용하지는 못해서 또 짜증이 나고 불안해진다. 글을 매일 꾸준히 쓰는 사람이 위대한 이유는 '이 글이 좋은 글이 아니다'라는 불편한 느낌과 매일 싸우고, 그 싸움에서 끝끝내 이겨내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쩌면 당신은 모든 느낌들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단지 나쁜 느낌만을 피하려 애쓰는 것뿐이라고. 그러나 모든 파도를 피하지 않고 나쁜 파도만 피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어떤 파도가 당신을 덮칠지는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헤엄친다는 것은 모든 파도에 나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더 마음에 드는 파도가 있을 것이고, 더 기꺼이 젖고 싶은 파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취향은 밀려드는 파도와 아무 상관이 없고 그 파도에 대한 당신의 통제력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모든 파도를 평가해서 오직 좋은 파도만이 밀려들기를 바란다면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이 여전히 재미있을까.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려면 기꺼이 모든 파도들을 경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불안한 완벽주의자>에는 '느낌'에 관한 독창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 나쁜 느낌은 거부하고, 좋은 느낌만 수용하려는 '편식'이 우리가 '불안한 완벽주의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작가는 지적한다. 나쁜 느낌에 대한 거부감은 곧 특정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한 회피로 이어지고, 회피는 삶의 공간을 축소한다. 작가의 관점에 의하면 완벽주의란 곧 좋은 것만을 느끼려고 애쓰는 상태이며, 이는 바다를 헤엄치면서도 물에 젖지 않으려 하는 것과 똑같이 터무니 없는 바람이다. '어떤 느낌이든 받아들일 수 있고 유효하다'는 작가의 심리학적 고찰은 스스로에게 더 폭넓게 느낌을 체험하도록 허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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