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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Jan 05. 2025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_허지원

스스로를 가치 없는 사람으로 느낄 때, 자기계발서는 노력으로 결함을 고치고 능력을 키우라고 독촉한다. 하지만 허지원 교수의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는 다른 접근을 제안한다. 이 책은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인식일 수 있다는 것을 심리학과 뇌과학의 지식을 통해 증명한다.


책은 가상의 상담 사례를 제시한 다음, 해당 사례에서 드러난 문제를 작가가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자존감, 인정 욕구, 완벽주의, 애정 결핍, 의미 강박, 우울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목차를 구성하여 일반 독자들이 내용에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책은 자신을 자기파괴적 행동으로 이끌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지침과, 독자가 스스로 생각 패턴 및 사고 회로를 성찰하도록 유도하는 질문을 제공한다. 이는 독자가 책의 내용을 실제로 수용하여 자신의 문제를 점진적으로 고쳐나가는 것에 효과적이다.


책을 읽으면 모든 내용은 "나도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를 함부로 규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이는 자신을 일관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설명할 수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에게, 다양한 모습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 이해의 길을 제시한다.


물론 자존감이 높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 역시 매일매일 위아래로 끊임없이 요동치는 자존감을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떤 날은 스스로가 괜찮아 보이고, 어떤 날은 기분이 바닥 끝까지 가라앉는 경험을 하면서도 그저 버티며, 꾸준히 살아갈 뿐입니다.

→높은 자존감과 낮은 자존감이라는 프레임이 허상에 불과함을 지적하면서, 자존감의 ‘절대적’ 개념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낮은 자존감을 지닌 사람으로 자학하는 대신, 우리 모두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유동적인 자존감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냈을 때 경험하는 카타르시스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분노를 표출할 때 나의 모든 감정 반응은 분노로만 집중되고, 분노 외의 감정인 외로움, 슬픔, 묘한 안도감 등을 돌아볼 수 없습니다. 결국 불쾌한 경험에서 뜻밖의 통찰이나 지혜를 얻을 기회가 박탈됩니다. (중략)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쓰기 시작하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경계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어느 순간 악착같이 애를 쓰고 있어야만 자신이 보호되는 상태라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 분위기와 상대의 의도를 멋대로 왜곡하여 분노를 표출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책은 자신의 분노 버튼을 섣불리 누르기 전에, ‘저 사람은 나를 ‘그럭저럭’ 좋아해 왔는가. 저 사람은 ‘대체로’ 나를 아껴왔던 사람인가. 저 사람의 저런 이야기는 보통 별 의미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간 관계의 역사를 돌이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의 분노 버튼이 눌리는 지점을 냉정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이나 감정, 자신의 비합리적인 생각이 원인이지만, 그것을 애써 타인의 잘못으로 위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는 항상 분출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다. 때로는 분노에 거리를 두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내 안에서 나를 찌르는 그 어떤 내부의 적이 없다면 외부의 그 무엇도 우리를 함부로 깎아내리거나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중략) 이번의 시도가 좋은 결과가 가져오면 좋겠지만, 아니면 또 마는 것입니다. 어쩌다 나의 노력 덕분에 일이 잘 된다면, 나는 작은 자기효능감 하나를 챙기고 다음 일을 도모하면 됩니다. 만약 안 된다면 그냥 마는 겁니다.

→완벽주의에서 탈피할 방법은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태도를 갖추고, 그 어떤 완벽주의도 개입할 여지가 없는 기쁨의 목록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잘하고 싶은 것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보다는 굳이 그것을 잘하고 싶었던 이유를 돌이켜보거나, 스스로를 순수하게 행복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한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건강에 더 도움이 되는 행동일 수 있다. 삶이라는 동사 앞에, ‘완벽하게’라는 부사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그럭저럭’이다.


당신의 기대는 한 번도 죄였던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그냥 순수하게 기대했던 것뿐이고, 당신의 기대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아무 이유 없이 운 좋게 성취할 때도 있고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기대는 죄가 없고, 당신도 죄가 없습니다. 그냥 상황이 그랬습니다.

→기대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때로는 실망하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한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기대는 오히려 일을 망치기 쉽다는 사고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기대는 죄가 없고 따라서 기대해도 괜찮다는 책의 문장은 사고의 전환을 일으킨다. ‘기대하지 않겠다’는 태도보다 기대를 배반하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아도 ‘뭐라도 하겠다’며 스스로를 단호하게 일으켜세우는 것이 더 성숙한 태도이며, 실망을 할 때도 남에게 전시하기 위한 자기 연민적인 피상적인 실망이나, 최선을 다하지 못한 상황을 감추기 위한 기만적인 실망은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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