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 정하기
집 안에는 내가 늘 서서 오늘 할 일이 무엇인지 훑어 보는 자리가 있다. 바로 화장실 앞. 특이하게 현재 사는 전세집은 화장실 문이 미닫이인데, 화장실에서 나와 문을 닫고 불을 끈 뒤(또 특이하게 조명 스위치가 미닫이 문 옆에 붙어 있어 화장실 불을 켜고 끄려면 문을 열고 닫아야 하는 구조다) 문을 제자리에 놓고 돌아서면 주방과 거실, 그리고 세 개의 방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다. 오늘도 나는 거기 서서 할 일을 가늠해본다. 눈에 보이는 것들부터 먼저 머릿 속으로 읽어 내본다.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 거리, 닦아야 하는 둘째 젖병들, 정리해야 하는 아일랜드 식탁 위, 거실에 널부러져 있는 첫째가 놀고 간 흔적, 왼쪽 바닥의 상에 그대로 남아 있는 전쟁터 같았던 아침밥의 흔적들. 아직 방 세 개와 베란다, 현관은 훑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매번 생각한다. ‘이걸 다 언제 하지?’, ‘이거 말고 난 다른 걸 하고 싶은데..’
여기서 말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주로 유튜브나 책, 인터넷 기사 등을 훑어보며 하는 (투자)공부, 사업 준비 등이다. 그때 그때 챙겨 봐야 하는 시의성 있는 기사나 영상은 앞 뒤 제쳐놓고 보고, 기한이 있는 것들은 먼저 하기도 하지만 단발성의 시도들일 뿐 사실 연속성 있게 진행되는 건 잘 없다. 집안일이며 가정사며 손과 발은 다 걸쳐 있고, 여기에 자발적으로 벌려 놓은 여러 일들까지, 하는 건 많은데 제대로 되는 건 딱히 없는 느낌이다. 첫째 아이 때는 정신은 없지만 적어도 나름 알맹이 있게 쳐내는 느낌이었는데, 둘째가 태어난 뒤로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돌아가면서 다 조금씩 맛만 보는 느낌이다. 때로 현기증이 난다.
고민 끝에 일단 문제는 현실인식 부족이라고 결론을 냈다. 이것은 진리로, 나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난 성공신화나 자기계발을 추종하는 편으로, 따라서 내가 최대한 잠을 줄이고 바쁘게 움직이면 다 할 수 있다는 주의다. 고통을 즐기는 편이랄까. 그래서 육아로 인해 힘들고, 육아로 인해 엄마, 즉 여자가 손해를 본다는 식의 말은 사실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못하는 건 못하는 거고, 힘든 건 힘든 거란 걸 그냥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현 상황에 맞지 않게 너무 욕심을 부린 탓도 있다. 중요한 걸 선택하고, 또 덜 중요한 건 선택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내 상황과 자원에 맞는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고 있지 않는 거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선택과 집중, 특히 집중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집중은 선택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걸 의미하는데, 나에게는 행동의 근거가 되는 원칙과 우선수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 날은 이런대로 저 날은 저런대로 사는 게 실은 내 습성이다. 그렇지만 열심히는 산다. 바로 여기에 맹점이 있다. 일관성이 없으니 오직 쌓인 결과물만이 낼 수 있는 폭발력이 생길 수 없다. 늘 그래왔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인정하기 싫어도 난 현재 영유아기의 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둘째는 아직 돌도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순위가 없을 수 없다. 우선순위 1순위는 육아와 집안일 등의 가정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선순위 1순위라고 해서 주구장창 그 일만 하라는 법은 없다. 또 100% 모든 에너지를 쏟아 전력으로 할 필요도 없다. 살아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가사일을 하되 가용한 범위 안에서 외부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