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수이자 JYP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인 박진영 씨가 정부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전에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맡았던 영화감독 이창동 씨나 배우 유인촌 씨는 연예인이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박진영 씨의 위원장 내정은 매우 특별하게 여겨지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 현 K-POP 시장을 주도하는 에이전시 중 하나인 JYP의 수장이 직접 뛰어든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았습니다.
박진영 씨는 한국음악이 겨우 아시아권을 두드리고 있던 2000년대 초반,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가서 CD를 팔고 세계 음악시장을 두드린 프로듀서입니다. 국내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god, 박지윤, 량현량하, 원투, 비 등 다양한 가수들의 프로듀싱 및 앨범제작을 맡았던 그는 2003년 현 하이브의 의장인 방시혁 씨와 함께 미국 시장을 진출을 위해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작사/작곡한 가수 비의 2집 타이틀 곡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한 뒤, 더 이상 한국에서는 이룰 목표가 없다고 생각해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고 방송에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제작하는 가수들이 모두 1위를 하고, god의 경우 2002년 타임지 아시아판의 표지 모델로 나오는 등 K-pop이 정서가 전혀 다른 유럽이나 북미권 시장에서도 충분히 먹힐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을 바라보고 내린 결정 같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아는 형 집에 얹혀살면서 음악 작업을 했습니다. JYP 주주, 임원들이 아무 기반도 없는 미국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하는 걸 우려해 회사 돈 없이 개인적으로 미국에 가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혼 집 창고에서 방시혁 씨와 매일 음악작업을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국 내 여러 음반레이블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CD를 돌렸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판 곡이 빌보드 Top 10에 진입하는 성과를 내면서 미국 진출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지소울과 임정희 씨 등을 미국에 보내 이들을 현지 데뷔 목적으로 트레이닝도 시켰습니다. JYP 미국 지사를 세운 것도 그 때쯤이었습니다.
2009년 박진영 씨는 당시 국내에서 정상의 인기를 얻고 있던 원더걸스까지 미국에 진출시킵니다. 금융위기로 인해 JYP 내 미국지사가 정리되고 아시아권 가수들은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앨범도 내주지 않을 정도로 미국 음반시장 내 해외가수들의 위치가 극단적으로 작아진 시기였습니다. 원더걸스는 당시 10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던 밴드 조나스 브라더스의 전미 투어 오프닝 가수로 계약을 맺어 모든 코스를 따라다니고, 공연 전/후 공연장 밖에서 CD를 들고 자신들을 홍보하러 다녔습니다. 박진영 씨는 CD를 미국 내 아동복 체인에 뿌리며 원더걸스를 홍보했죠. 그 결과 원더걸스는 <Nobody>의 영어 버전으로 빌보드 Hot 100 76위에 드는 성과를 남겼습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1위를 밥 먹듯 찍는 지금은 형편없는 성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원더걸스의 Hot 100 진입은 아시아권 가수로는 30년만에 진입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후 박진영 씨의 미국 진출은 대중들에게 실패로 여겨졌고, 본인도 어느 정도 이런 시선을 받아들이며 한동안 미국 시장과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특히 원더걸스의 경우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국내 활동에 공백기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멤버 교체까지 벌어지며넛넛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의 인기를 많이 잃어버렸기에 팬들의 원성이 대단했습니다. 미국에서 현지데뷔를 하기 위해 트레이닝 받던 미쓰에이의 민, 지소울, 임정희 모두 여러 사정으로 데뷔에 실패해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특히 지소울 씨는 14년의 세월을 연습생으로 보내다 2015년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국내 데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시장에 무턱대고 도전했던 JYP에게 남겨진 결과는 손해가 더 많았죠.
그렇게 박진영의 시행착오 중 하나로 남을 뻔했던 K-pop의 세계화는 방탄소년단, 블랙핑크의 성공으로 크게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SNS의 발달과 영미권 대중들이 원하는 음악적 정서 및 메시지를 캐치해서 밀어붙힌 결과,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는 영미권 음악시장에서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더 이상 대중들이 그들을 신기한 외국 가수가 아닌 자국 시장의 가수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K-pop 시장이 해외에선 황무지였던 20여년 전,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기초를 닦았던 박진영 씨의 이야기가 뒤늦게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트와이스가 빌보드 200에 10개의 앨범을 순위권에 집어넣었고 스트레이 키즈가 빌보드 200에서 7앨범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영미권 시장에 완벽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박진영 씨도 지난 세월의 생고생을 어느 정도 보상받게 되었습니다. 트와이스가 2019년에 발표한 ‘Feel Special’ 은 미국에서 데모할 때 민중가요처럼 불리고 있다죠.
이런 스토리를 선두에 놓고 봤을 때 박진영 씨의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 취임은 현장에서 발 벗고 뛰어본 경험형 인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 가수들이 영미권 음악시장의 문을 열기 위해선 결국 이들 시장의 구조 및 정서를 완벽하게 캐치해야 하는데, 그 열쇠를 얻기 위해 맨몸으로 미국에 가서 맞서며 얻어온 노하우가 현 K-pop 시장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걸 마침내 인정받은 것 같네요. 박진영 씨 본인도 위원장 내정 후 소감에서 이러한 미국에서 보낸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를 바탕으로 한류 및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K-pop의 향후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K-pop이라는 장르가 영미권 음악시장에서 완벽한 토착화를 이루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믿습니다. 한국 가수들이 빌보드에서 순위권에 드는 게 이례적인 결과가 아닌 당연한 경쟁처럼 여겨질 정도로 폭발적이고 폭넓은 대중성을 갖추게 된다면 해외 시장에서 한국 문화의 브랜드 가치는 더욱 성장할 겁니다. 1964년 비틀즈가 British Invasion을 통해 미국 음악시장의 지분을 아예 먹어버리면서 영국 가수들은 더 이상 미국을 도전해야 할 어려울 시장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K-pop도 그럴 단계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가수들이 빌보드 차트에 자신의 노래를 올리는 것이 더 이상 이례적인 일이 되지 않는, 영미권 음악시장의 지분을 당당히 차지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