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보는 채하생각 - 스페셜] 이순재의 예술하이킥

by 유채하

어제 뉴스를 보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 최고령 배우, 예술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다는 이순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지난 해 KBS 드라마 <개소리>를 통해 데뷔 70년만에 KBS 연기대상 '대상' 을 수상한 뒤 힘겹게, 그리고 감격스럽게 수상소감을 말씀하시던 모습이 생생한데... 그의 여정은 이렇게 멈추었다. 예술가는 작품을 남기기에 흔적으로 계속 볼 수 있다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많은 대중들은 그를 '거침없이 하이킥' 으로 가장 친숙하게 기억하는 것 같다. 그에게도 남다른 작품인 건 틀림없다. 금관문화훈장, MBC 명예의 전당 등 다수의 영예를 안았던 그도 '거침없이 하이킥' 을 통해 대중들에게 더욱 친숙하고 가까운 연예인이 됐으니 말이다. '야동순재' 로 대표되는 그의 코믹연기는 대중들로 하여금 그가 얼마나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자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야동을 보다가 들켜 도망가는 그의 연기가, 아내 문희와의 진한 러브스토리로 바뀌고, 손자 준이를 팽개친 민용과 신지를 매섭게 다그치는 올곧은 시아버지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시트콤에서 이런 다양한 장르의 연기를 맛볼 수 있을까? 물론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작품 자체가 시트콤 치곤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집어넣은 작품이지만, 이러한 '실험체' 에서 잘 녹아들 수 있었던 건 단연 이순재 선생님의 연기였다.


'거침없이 하이킥' 이 끝난 뒤에도 그는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한계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하이킥에서 야동 보고 도망가던 할아버지가, 하이킥 종영 후 MBC 드라마 <이산>에서 카리스마 있는 왕 연기를 보여줬다. 이듬 해 출연한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자신이 치매가 아니며 여전히 유효한 사람이라고 설득력 있게 울부짖는 중년의 신사로 변신했다. 그는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연기를 확장시켜 나갔다. 이 때 그의 나이는 70대 중반, 늦은 나이에도 그는 연기자로서 스스로를 도전의 굴뚝에 내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지난 해 백상예술대상에서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하나인 '리어왕' 을 연기했다며 무대에서 쑥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는 후배 배우들에게 정말 연기를 정통으로 배우고 싶다면 연극을 도전해보라고 자주 권했다고 한다. 맞다, 관객과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한 연극은 가장 연기다운 장르이면서도 가장 도전하기 어려운 장르이다. 그만큼 많은 신인배우들이 연극에 도전하고 싶어하고, 실력향상을 위해 대학교에 입학하거나 유학을 가기도 한다. 아이오아이 출신 배우 김소혜 씨는 이미 <윤희에게>로 황금촬영상까지 받았음에도 다시 연기학과에 들어가 연극 무대에 뛰어들었다. 이미 배우로서 어느 정도 안착한 그녀가 다시 신인처럼 돌아가 연극을 하게 된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연기자로서 연극이 가진 정통성이 무척 탐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순재 선생님 역시 연극 무대에서 가장 혼신있게 빛났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빠', <야인시대>의 '원노인', <포도밭 그 사나이>의 병달,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그리고 예능 <꽃보다 할배>의 그 꿈많은 모습까지. 이제 그는 그 많은 흔적들을 뒤로 하고 영면에 들었다. 대중들은 배우 이순재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난 그가 남긴 말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연기 하나로 설명 가능한 엑팅스타", 그리고 "주저앉은 배우가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전진하는 배우". 그가 후배들에게 꼭 명심하라며 이야기했던 말이다. 이순재 선생님은 돌아가셨지만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촬영현장과 무대에서 치열하게 남긴 예술적 흔적은 오랜 시간동안 대중들의 뇌리에 남을 것이라 믿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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