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나무에 있을 때보다
바닥에 내려앉았을 때 더 오래 머문다
가지 위에서는 서로 닮은 빛 속에 섞여 흐릿하지만
땅에 닿는 순간 비로소 하나의 형체로 또렷해진다
사람들은 그 위를 지난다
조심하지도, 그렇다고 굳이 피하지도 않은 채
그 무심한 발길 사이에서
꽃은 천천히 제 모양을 놓아간다
우리는 대개 가장 온전했던 순간만을 기억하려 한다
빛이 가장 선명하던 때
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던 상태
그 찰나의 기억은 오래 남지만
시간은 말없이 스며들어
색을 덜어내고 가장자리부터 조용히 말려 올라간다
그 무너져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긴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꽃이 다 지기도 전에
우리의 시선이 먼저 떠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럼에도 어떤 것들은 끝내 그 자리에 남는다
밟히고 흩어져 처음의 형색에서 아득히 멀어졌는데도
이상하게 자꾸만 눈이 머문다
가장 또렷하게 남는 것은 언제나 화려함이 지나간 뒤에 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이와 닮아 있다
정돈된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서로의 형태는 조금씩 허물어진다
그 흐트러짐 속에서도
여전히 같은 사람으로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는지
그 질문 앞에서
어떤 인연들은 말없이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피기 전의 가능성과
만개한 순간의 환희를 더 오래 바라보지만
나는 그 이후의 저문 모습에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꽃은 진다
그리고 진 뒤의 모습까지 숨김없이 남긴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처음의 눈부신 빛이 아니라
그 시듦까지 함께 견디며 머물렀던 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