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시선

안나 카레니나

by 김운

과거로 돌아가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내가 올바르다고 믿었던 선택은 정말 다른 결말을 데려왔을까.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존재에게 인과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시공간은 흐른다는 이 강력한 전제는 모든 사건에 원인을 만들고, 결국 선택의 결과에 따라 후회라는 감정을 남기게 되는 것 같다. 인간에게 과거는 다시는 닿을 수 없는 곳이기에, 한없이 슬프면서도 이상할 만큼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는 가끔 인간의 눈으로는 닿을 수 없는 감각을 상상하곤 한다.
빛이 인식하는 세상은 어떨까.


질량을 갖지 않는 광자의 시선에서는,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붙잡고 있는 많은 것들이 조금씩 의미를 잃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고유한 위치라는 개념도, 시간이 만들어내는 인과라는 개념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놓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위치는 고정된 점이 아니라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만 드러나고, 사건은 원인과 결과로 길게 이어진 서사라기보다 한순간에 엮여 있는 구조처럼 읽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나라는 존재도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 같다.
나는 단단한 개별 실체라기보다, 더 큰 구조 안에서 잠시 일렁이는 작은 국소적 파동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래서, 그런 시선에서는 후회라는 감정도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놓일 것 같다.
후회는 시간을 따라 원인을 되짚고, 다른 결과를 상상하는 존재에게서 더 선명해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과보다 구조가 먼저인 시선에서는, 이미 지나간 사건을 붙잡아 다시 흔드는 일이 지금처럼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나간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더 큰 무늬 안에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천체물리학을 좋아하는 나는 오래전부터 다차원이라는 개념에 끌려왔다.
그 구조를 머리로는 이해해보려 하면서도,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느낄 수 있을지는 늘 막막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감각을 그대로 사용하는 한, 감각이 정해 놓은 차원 이상의 세계를 체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감각으로 닿을 수 없다면, 인간의 감각을 벗어난 존재를 상상해 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빛과 블랙홀이라는 존재에 오래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빛의 시선을 상상하는 일은 지금도 늘 흥미롭게 느껴진다.
인과가 아니라 구조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는, 내게 언제나 낯설고도 조용한 설렘을 주는 것 같다.


특히 빛을 떠올릴 때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관계와 경계에 대한 생각이다.
관측자의 존재에 따라 위치가 다르게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측자의 시선에서의 이야기일 뿐이고, 빛의 시선에서는 절대적인 위치라는 것이 처음부터 큰 의미를 갖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직 관계만이 남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는 스스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따라 비로소 드러나는 것 같다.
그 점에서 빛의 세계는 철저히 관계로 이루어진 세계라기보다, 관계가 먼저 말을 거는 세계처럼 느껴진다. 자신과 다른 존재들과의 상호작용이 곧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게 하는 세계. 경계조차 단절의 선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게 만드는 얇은 접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빛의 시선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관측자의 시선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시선인지도 모른다.
남이 규정해 주는 위치가 아니라, 내가 어떤 관계를 인식하고 어떤 구조를 읽어내는가. 아마 내가 빛의 시선을 궁금해하는 이유도 결국 그 근처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인간의 속도로 살아가고, 여전히 시간의 흐름 안에서 선택하고 후회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인과를 잠시 내려놓고, 구조를 바라보려 한다.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슬픔 대신, 지금 놓여 있는 관계의 모양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려 한다. 이미 지나간 것의 그림자보다, 아직 내 앞에 남아 있는 연결의 결을 느껴보려 한다.


빛의 시선을 완전히 가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시선에 가까워지려는 상상만으로도,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내가 속한 구조를 이전보다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아직 그 입구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멀고 낯설지만,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끝내 다 알 수 없더라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가까이 가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감사에 머무는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