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형외과 의사의 혼잣말

나는 지금 이 장면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by 김운

개인의 삶이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라면 어떨까.
모든 장면이 이미 촬영돼 있지만, 정작 주인공만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모르는 영화.
카메라는 이미 모든 장면을 담아두었는데, 출연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다음 장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영화.


나는 오랫동안 개인의 삶은 자유 의지를 통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믿어왔다.
노력하면 달라지고, 선택하면 방향이 바뀌고, 마음먹으면 삶이 조금은 나아진다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보다 보면 그 믿음이 흔들릴 때가 많다.
교통사고나 부상은 개인의 부주의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조심하며 살아온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삶의 리듬을 잃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예고 없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그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개인의 운명은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블록 우주’라는 개념이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인과관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구조로 놓여 있다는 생각이다.
마치 영화 필름처럼 말이다. 필름에는 처음과 끝이 함께 담겨 있고, 우리는 그 가운데 한 프레임을 ‘현재’라고 부를 뿐이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시간 속을 지나가며 흐름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이런 우주를 상상하면 시간 여행을 떠올리는 방식도 조금 달라진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그 돌아감조차 이미 구조 속에 포함돼 있다면 내가 과거에서 하는 행동은 결국 전체 이야기의 일부일 뿐일 테니까.
역사를 뒤집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찍힌 장면을 다시 밟는 것에 가깝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결국 이미 정해진 길을 걷는 것이라면, 노력과 선택은 도대체 무엇이 될까.


하지만 나를 자연 속의 구성요소라고 생각하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연은 개별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별은 태어나고 사라지고, 그 흐름은 아주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이 특별한 예외라고 말할 근거가 정말 있을까.


그렇다면 과거를 바꿀 순 없을까.


여기서 나는 조금 다른 생각에 닿는다.
과거에 발생한 사건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달라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 또한 내 삶 속에 이미 포함된 변화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날 힘들게 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면 추억이 되기도 한다.
그 사건이 좋은 계기가 되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고통은 여전히 고통으로 남지만, 그 고통이 내 삶 전체를 정의하지는 못한다.
시간이 흘러서라기보다, 그 일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조금 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미래를 안다는 것이 꼭 축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지금의 내가, 지금 아는 모든 것을 그대로 가진 채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산다면 어떻게 될까.
오늘에 이르기까지 했던 노력과 인연은 어쩌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 순간마다의 떨림, 두려움, 선택, 우연, 오해와 화해가 한꺼번에 증발해 버릴지도 모른다.
결국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으리라.


어쩌면 자유의지는 결말을 바꾸는 힘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주어진 장면 속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와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 정말로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이라면,
나는 결말을 훔쳐보기보다 지금의 장면을 충실히 살아내는 쪽을 택하고 싶다.


블록 우주가 실제 모습이든 하나의 비유이든, 적어도 나에게 남는 질문은 결국 이것 하나다.


나는 지금 이 장면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모두 이미 찍힌 필름 위를 걸어가면서도,

매 장면마다 조금씩 다른 인간이 되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착각하지 않으려 한다.
거대한 구조 속의 한 존재로서, 오늘의 장면 앞에서는 조금 더 겸허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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