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을 바라보다

by 김운

이유 없이 답답한 날이 있다.

특별히 잘못된 일도 없는데, 현실 한가운데 멍하니 서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방향을 잠시 잃어버린 사람처럼.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손안의 작은 화면 속에서는 타인들의 단편적인 화려함이 끊임없이 흐른다.

그 매끄러운 일상들을 보고 있으면 나의 하루는 유독 투박하고 평범해 보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스스로 평범한 존재임을 알아가는 과정이라지만, 사실 그 평범함조차 유지하기가 버거운 날들이 있다.

남들만큼 사는 것, 큰 사고 없이 하루를 채워 나가는 그 당연해 보이는 일들이 사실은 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 무거워진다.




그럴 때면 나는 의식적으로 시선을 먼 곳으로 보낸다.

헬스장에서 몸을 움직이거나 골프 연습을 하고, 일과는 상관없는 책을 뒤적이며 마음을 환기해 보려 한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봐도 자리 잡은 답답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나의 노력만으로는 이 공기를 단번에 바꿔놓기 어렵다는 걸 실감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멀리, 현실의 무게가 잠시 잊히는 ‘무한’의 세계를 떠올려 본다.

어떤 대단한 정답을 찾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금의 나를 조금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나는 유한한 존재다.

끝이 있는 시간을 살고, 언젠가 사라질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내가 ‘끝이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묘한 기분을 준다.


자연수의 세계에는 마침표가 없다.

어떤 숫자를 떠올려도 그 뒤에는 항상 다음 숫자가 이어진다.

그런데 수학자들은 말한다.

이 끝없는 세계 안에도 크기의 차이가 있다고. 어떤 무한은 다른 무한보다 훨씬 더 크고, 무한조차 하나의 계층을 이룬다고.

이 ‘무한의 계층’이라는 개념을 가만히 더듬다 보면, 아주 잠깐 다른 시야를 빌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상의 좁은 틀에 갇혀 있던 의식이 멀리 확장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끝에서 묘하게 고요한 겸허함이 따라온다.


그 높은 시선 아래에서 내가 서 있는 세계의 크기는 조금 달라 보인다.

나를 짓누르던 비교나 일상의 압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들이 더 큰 구조 속에서는 아주 작은 좌표의 흔들림처럼 느껴질 뿐이다.


무한을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일이 아니다.

평면 위를 걷던 사람이 잠시 언덕에 올라 동네 전체를 내려다보는 일에 가깝다.

높은 곳의 시선으로 내려다본다고 해서 좁은 골목길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그리고 나를 가로막았던 벽이 사실은 전체 구조의 작은 선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나는 다시 현실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답답함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무한을 떠올린다.

지금의 나를 흔드는 감정들도 더 큰 구조 안에서는 작은 좌표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잠시 다른 시선으로 보고 돌아온 탓인지, 익숙한 방 안의 공기와 평범한 하루가 어딘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무한이라는 가장 먼 곳으로 시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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