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형외과 의사의 혼잣말
의사가 되고 나서 진료실 문을 열 때마다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이 공간 안에서의 목적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목적을 명확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치료의 절반은 이미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목적이란 무엇일까.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목적은 낫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환자를 보는 나의 목적 또한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두 대상의 목적이 같아야 같은 곳을 향해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미지가 어찌됐든 대부분 환자에게 해를 가하려는 의사는 없다.
하지만 간혹 다른 목적이 마음에 스며드는 경계의 순간이 생긴다.
내가 연구하는 질환의 환자가 찾아오거나, 해보고 싶던 수술의 환자가 찾아오거나, 혹은 인센티브에 마음이 혹할 때가 그렇다.
이런 순간이면 나도 모르게 이 환자의 상황과 이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기도 전에
내가 하고 싶던 치료를 선택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마치 답은 이미 정해놓고 그에 맞는 이유를 사후에 짜 맞추는 것처럼.
이런 마음의 경계가 들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의 형태를 들여다보려 한다.
물론 이런 생각들에도 기본적으로 환자가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겠지만, 혹 수술 진행이 나의 욕심에 의해 결정된 것은 아닌지, 이 환자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치료를 선택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결과가 좋으면 사람은 쉽게 스스로의 선택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치료라는 것은 아무리 당시 많은 고민을 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 과정 속에 조금이라도 사심이 섞여 있었다면 그 후회는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의사가 돈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것도 진짜 많이.
현대 사회에서 돈은 결국 선택의 자유, 어쩌면 경제적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사소한 이득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실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적어도 진료실 안에서만큼은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목적에 맞는 일을 행했을 때 따라오는 돈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진료실 안에서의 목적이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해 있다면 그 순간부터 치료의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파동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는 파동은 서로 겹쳐 더 커지고 서로 다른 방향의 파동은 결국 서로를 약하게 만든다.
의사와 환자의 바람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서로 같은 방향을 향할 때 치료는 더 큰 힘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바라는 것부터가 목표를 이루는 첫 번째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목표는 상황과 장소에 따라 적절한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
앞으로 몇 년간은 돈과 크게 관련 없는 생활을 이어가겠지만 주변의 선배들이 결국 남지 않고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걷는 길의 결말도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무한을 바라본다. 그래야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잊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