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너무 가까이하고 싶지만 나를 밀어내는 그 무엇(1)
어릴 때는 이야기를 참 좋아했다. 콩쥐팥쥐, 백설공주, 해님달님, 신데렐라... 동화 속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일하고 온 엄마에게 자기 전에 꼭 책을 읽어달라고 졸랐고, 외할아버지나 이모들이랑 있을 때도 많이 읽어달라고 졸랐다. 한글을 떼고 나서는 큰 글씨에 그림이 더 많은 책들을 읽으며 즐거웠고 혼자 책을 읽을 수 있음에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턴가... 책 읽기가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매주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숙제가 있었는데 늘 읽는 책이 너무 유치원 시절 동화여서 담임 선생님이 다른 책을 읽으라고 했다. 그때 엄마가 진짜 바쁠 때라 알림장에 쓴 게 전달이 잘 안 됐다. 그래서 선생님이 학급문고에 있는 책을 읽으라고 한 권씩 보내주셨는데 책을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두께도 나에게는 너무 두꺼웠고, 내용도 어려웠다. 책에 그림도 너무 없고...
읽지를 않았으니 독후감을 쓸 수 없어서 늘 내가 읽던 걸로 독후감을 써 갔더니 선생님은 내가 선생님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처음에는 조용히 불러서 혼내시고 그다음엔 반 친구들 앞에서 혼내시고 마지막엔 애들 앞에서 공책으로 머리를 때렸다. 어려워서 못 읽겠는데.. 내 얘기는 들어주지도 않고, 야단만 치고 때리기까지 하고... 그때부터 학교 다니기도 책 읽기도 모두 싫었던 것 같다.
그러다 책보다는 음악이나 TV를 가까이하며 교과서도 잘 안 들여다보는 세월을 몇 년 보내고 검정고시 준비를 해야 하니 결국 책이란 걸 들여다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걸 재미있게 봤겠는가. 할 수 없으니까 붙잡고 있었던 거지.
그러던 어느 날, 엄마랑 장을 보러 마트에 갔는데 그 넓은 마트 한 구석에서 책들을 50% 할인하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워낙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당연히 그 코너를 들렀다. 엄마가 열심히 책을 고르는 동안 나도 심드렁하게 책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겉표지에 마술사 모자를 쓴 신사가 코끼리를 타고 있는 그림이 표지에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책을 들춰봤는데 글씨도 꽤 크고 그림들도 적당히 있었다. 왠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고, 엄마는 네가 웬일이냐며 얼른 사 주셨다. 마침 할인이기도 했고... (정가 판매였어도 사 주셨을 테지만)
예상한 대로 책은 상당히 읽기 편하고 쉬웠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80일 동안 세계 여행을 다 하고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오기까지 겪은 그 수많은 모험 이야기가 마치 내가 직접 세계 일주를 한 기분이 들게했었다. 책 읽기가 그렇게 재미있는 건지 정말 오랜만에 깨달았다. 내가 그 책을 읽은 게 열여섯, 열일곱 즈음이니 6~7년을 책 한 자 안 읽다가 처음으로 소설 한 권을 끝낸 거다. 아주 오랜만에 글이 주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트에서 산 그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읽는 수준의 책이었다. '아... 나한테는 이 정도 수준의 책을 읽으면 맞는구나. 어? 그럼 이 정도 수준으로 된 책을 읽으면 그래도 책들을 읽을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그 '80일간의 세계일주' 책이 나온 출판사의 책들을 몇 권 사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전집으로 들여주셨다. 덕분에 나는 남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경험해 봤을 책 읽기의 즐거움을 그 시기에 경험했다. 남북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를 기다리며 착하게 사는 네 자매 이야기, 집 뒤에 숨겨진 비밀 정원을 몰래 가꾸는 소녀 이야기, 집도 절도 없지만 강을 따라 풍류를 즐기는 소년 이야기 등을 읽으며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겼다.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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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오랜만에 두 편으로 나눌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