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420000

이번 글은 많이 안 봤으면 좋겠습니다.

by 언더독

2022년 기준으로 하면, 한국에 금융자산 10억 이상을 보유한 부자들은 0.82%라고 한다. 42만 명 정도이다. 이는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자산규모이다.


인간의 삶은 다양하다. 나름대로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있다고들 한다. 나름대로 말이다.


여러분 개개인들이 보기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삶이 많은 것 같은가, 그렇지 않은 것 같은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아니, 그렇게 느낀다.


나름대로 걸출한 가치관들이 있다고 하며 산다고들 했다. 내가 개별적인 가치관에 대해 문제 삼는 말을 한다면, 그 대상은 욱하고 화를 내거나 내 연락을 끊을 것이다.


그런 가치관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왜 결과적으로는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는가.


남들 이야기하기 전에 앞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부터 털어놔야 하지 않나 싶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은 Guardian이다. 수호자라는 뜻이다. 내 부모, 내 형제, 내 사람들의 수호자가 되겠다는 게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수호자가 된다는 말은 부자가 되겠다는 뜻이다. 이는 진리이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필히 그 사람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부모, 형제 그리고 친지들을 지키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려고 사력을 다해 사는 것 같다.


나는 <한국 흙수저의 금융지식수준을 '하'상태에서 '중'상태로 만들어 전국의 가난을 삭제한다.>라는 사명의식을 지니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요즘 회의감이 든다. '구제하지 못할 사람들을 구제하려고 엄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서이다.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에게 그리로 가면 죽는다 말한들, 안 달려들 일도 아니지 않는가.


나는 부산 생활을 거의 정리했다. 다음 주면 상경을 한다. 그리고 부자들, 큰 돈들 곁으로 내 몸뚱이를 재배치할 것이다. 계획이 그렇다.


고통을 마주할 것이며, 늘 그래왔듯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가 고작 포르셰 끌고, 가슴 큰 골 빈 여자 끼고 다니려고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이유는 내 부모형제를 지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내 젊음은 절약과 투자, 그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한, 머리를 조아리는 굴복만으로 채워져 있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남루한 젊음을 매일 거울을 통해 확인하며,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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