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마다 추구하는 경제적 자유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 그 사이즈가 큰 사람들부터 예를 들어보겠다.
Big : 켈리 최, 그랜트 카돈, 마윈,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로버트 기요사키, 앤드류 테이트
Middle : 신사임당, 자청, 박세니
Small : 생각하는 보거스
Big 분류의 인물들은 무한한 확장에 포인트를 둔다. 세계적이다. 성장하지 않는 상태는 죽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효율성, 최적화와는 거리가 멀다.
Middle 분류의 인물들은 전국적이다. 이들은 Big 분류 인물들까지의 큰 확장 개념은 아니다. 어느 정도 규모와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최적화의 상태를 만들려 한다. 그때부터는 본인의 삶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Small, 한마디로 평범한 작은 부자이다. 전국적일 수도, 지역적일 수도 있다. 무한한 확장 또는 규모의 성장보다는 빠르고 효율적인 최적화가 최우선 목표이다. 본인의 삶에 집중하려는 성향이 가장 강하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리다 할 수 없다. 당연히 나는 Big, Middle 권역에 있는 인물들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본다.
모두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라는 점이 공통적이다. 근로자,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되려 취업이 안되어 자기 사업을 시작했던 사람들이다. 나도 그러하다.
'Comfort zone'이라는 개념이 있다. 말 그대로 편하고 익숙하다는 이야기다. 매일 하는 일은 비슷하고 따박따박 월급 나온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살고 있어 마음이 편하다. 자의든 타의든 이곳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것도 위 인물들의 공통점이다.
내가 배우고 접했던 배경지식으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은 자유인이다.
Comfort zone에 있는 당신은 자유인이 아니다. 노예이다. 옛날에 있었던 흑인 노예를 생각해 보자. 목화솜 따기, 밭 일, 가사 노동 등이 주된 업무였다. 말 안 듣고 일 안 하면 채찍으로 때리거나 밥을 안 주면 되었다. 문제 해결이다. 단순노동이기 때문이다.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단순노동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려면 기계를 알아야 하고 전구를 만들기 위해선 전기를 알아야 한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만들려면 물리를 알아야 하며 반도체를 만들려면 인간 문명의 기술을 집약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잘 해내려면 몽둥이로 때리거나 밥을 안 줘서 될 일이 아니다. 노예가 주도적으로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만들어야 한다. 무슨 이유에서든 스스로 연구하고 시도해야 실패와 실패를 딛고 결과물이 완성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그 이유를 무엇이 차지했을까. 화폐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 실적을 인정받으면 승진해서 월급을 더 받는다. 그러니 노예는 자발적으로 월 300만 원에 자기 시간과 정력을 자본가에게 반납한다. 되려 오버타임에 야근까지 불사한다. 노예들끼리 경쟁도 심화되니 이 현상도 더욱 불꽃이 일어난다. 이들의 피와 땀으로 자본가는 걷잡을 수 없이 성장한다. 비로소 노예제도가 대를 이어 받은 것이다. 조금 더 그럴싸해 보이는 포장이 된 것뿐이다.
자본가의 노예 랜드는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
규모가 크고 경직된 직장에 오래 있을수록 이러한 신 노예제도를 자각하고 상기하는 게 어려워진다. 수직적이고 반강제적인 애사문화가 답습되기 때문이다. 웃기지 않는가. 부장 노예가 과장 노예에게. 과장 노예가 대리 노예에게. 대리 노예가 사원 노예에게. 우리 노예들 노예짓에 더 파이팅 하자고 하는 것이다. 사실 자기들도 다 하기 싫으면서 말이다.
당신이 그런 직장인이라면 한번 생각해 보아라. 내 이야기가 당신 직장 사람들에게 씨알이나 먹힐까? 아마 점심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왕따나 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위 이야기는 모두 팩트이다. 2022년 12월의 팩트이다. 나는 여기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내게는 지켜내야 할 나 자신과 가족이 있다. 나는 노예로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비록 노예의 자손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말이다.
비싼 집에서 살고 외제차를 타고 쭉쭉 빵빵 여자와 다니며 우월감을 맛보고 싶은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활동을 외세의 방해 없이 누리고자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경제적 자유이다. 노예가 아닌 자유인의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