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9세 관점

나는 왜 헤어졌는가.

체스 게임.

by 언더독

2000년 대 초반 이별 발라드 감성의 오글거리는 내용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런 내용 아니다. 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6개월 정도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헤어지게 된 것은 순전히 내 탓이었고 내 결정이었다.


그 사람은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막내딸이었다. 사랑은 받은 만큼 줄줄 안다는 격언처럼, 그녀는 나에게 사랑을 줄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기 재산을 투자한다거나, 그에 대해 공부를 한다거나 하는 면은 없었지만, 저축을 잘하고 흥청망청 쓰지 않았던 사람이었다.(주목해야 할 점은, 요즘 세상엔 이 점만 되어도 가치가 상당히 높은 여성이다. 예전에는 이런 세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인간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다른 종족이라는 점을 깨우친 뒤로부터는 그러하다. 애초에 여성은 재산을 불리기 위해 디자인된 유기체가 아니란 점을 깨우쳤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딱히 없어 말하진 않았지만, 관계 초반에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잘 설명했는데, 그 또한 잘 반영해 주었던 그녀였다. 특히, 개인의 안위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예를 들면, 음주로 발생하는 골칫거리들)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그녀를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을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나기 전까지 여자를 대면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좋은 여자를 만나고자 했던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와는 1년 정도 교제하였는데, 만나보니 역시나 그녀는 보기 드문 좋은 여자였다. 행복하고 감사했던 나날이었다.


나는 규모 있는 자산을 일구어 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목표를 두고 사는 사람이다. 아직은 그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출을 통제하고 소득을 더 창출할 노력을 해야 한다.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나, 당시에는 어쩌면 이 사람과 결혼을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마음도 들었다.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은 내 와이프, 그러니까 가족이 되는 것이며 나는 가족을 반드시 지킨다. 내가 결혼을 고려했다는 것은 이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고로, 더더욱이 규모 있는 자산을 구축하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남자의 역할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족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다.


만남을 이어가고 서로 정이 깊어지며 나는 내 삶의 명확한 지향점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 사람도 그런 나의 뜻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런 게 고마워서 기념일은 물론, 꼭 그런 날이 아니더라도 꽃과 장문의 손 편지를 잊을만하면 가져다주었다.


지나치게 비싼 선물은 서로 자제했다. 여행을 가더라도 경비를 알뜰하게 썼다. 우리는 마음적으로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고, 서로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관계 자체는 이상적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다. 이 관계를 지속하기에는 양립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규모 있는 자산을 구축하기 전까지, 연애를 알뜰히 하는 행위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그녀도 이유를 충분히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명석한 여자였다. 그래서 이런 연애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알뜰히 산다는 것은 가능한 자신이 불편을 감수한다는 말이 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알아서 처리를 하는 행동이 많아질수록 지출이 줄어드는 것이 그 원리이다.


나 스스로는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었기에 별 탈이 없었다. 그녀는 나보다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녀가 직접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부자가 되는 과정에 있는 것과 내 여자를 충실히 지킨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문제임을 깨달았다.


당시 나는 28살, 그녀는 25살이었다. 20대 중반 이후로부터 나는 여성에 대한 공부도 해왔다. 생물학적으로 여자는 선천적인 시장 가치를 지니고 태어나며, 10~20대에 그 가치의 정점을 찍는다. 이후로는 쭉 하락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현명한 판단은, 20대 초중반에 자신이 차지할 수 있는 가장 고가치의 남성을 취하여 정착(결혼)하는 것이다. 더 가치가 훼손되기 전에 말이다.


그녀에게 가장 이득이 될 판단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완성된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당시 그리고 지금의 나는 완성된 남자가 아니다. 나는 남성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깊던지 간에 인생은 실전이므로, 그녀와 헤어지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정말 보기 드문, 현명한 여자였기 때문에 다른 자수성가 완성판 남자들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런 여자를 알아볼 것이며, 그녀는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베스트 옵션을 가질 것이다.


나는 더 빠르게 완성되기 위해 다시 고통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그게 이성적으로 맞는 일이었다. 나를 냉혈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연과 세상에는 순리라는 것이 존재하며, 보통 그 순리가 궁금하여 공부해 보게 되면 가장 근본은 결국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리적인 힘이든 경제적인 힘이든 정신적인 힘이든 말이다. 생물의 종을 막론하고, 수컷과 암컷 사이에도 순리가 존재한다. 감정과 분위기에 치우쳐 그 순리를 거스르게 되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 역시 그 판도라의 상자 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서 그렇다. 내 부모님은 두 분 다 확실한 경상도 핏줄이었기에, 한번 터졌다 하면 중간이 없었다. 그걸 성장기 내내 겪었다. 나에게 말랑 달콤한 로맨스를 기대하지 말라. 나는 순리와 이성에서 질서를 찾으며, 충실한 전통적 성별 역할분담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대로의 삶으로 돌아갔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책을 출판했다.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실업급여로 연명하며 두 번째 책을 쓰고 있다.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 대학 동기의 코딱지만 한 원룸에서 같이 지내고 있다. 헬스장 비용을 아끼기 위해 매일 팔 굽혀 펴기 150회 이상, 턱걸이 40-50회 이상을 하고 있다. 개수를 늘려가고 있다.


서울에 오니 예쁘고 섹시한 여자들도 많이 보인다. 나도 건강한 남자라 끌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떤 지점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또한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도 잘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내던져진 여건 속에서 목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을 이어나가고 있다. 체스 게임을 하듯이 말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일말의 동기부여와 방법도 존재치 않으며, 오직 철저한 자기 규율과 고통만이 있다. 그것이 나를 승리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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