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9세 관점

파라벨룸

행복을 찾아서.

by 언더독

다른 은하나 외계 세계까지는 모르겠다. 지구에 한정해서 이야기한다. 지구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있다. 그중에 인간이 있다. 다양한 생명체 중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을 하는 생명체는 인간, 대형 고래, 어쩌면 지능 높은 오랑우탄 또는 벨루가, 돌고래 등이 있을 것이다.


이외에는 그런 감정에 대한 존재조차도 모를 것이다. 극소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극소수 중에서도 행복을 인생 최대 목표로 삼고 사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을 잘 풀어볼 필요가 있다.


행복의 전제 조건은 평화이다. 나의 평화, 부모의 평화, 형제의 평화, 내 사람들의 평화. 이 4가지가 충실히 만족되면 진정한 행복이 펼쳐진다. 이것은 진리이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존 윅'의 '존 윅'을 아는가. aka(also known as) 'man of focus'이다. 집중의 사나이라는 뜻이 되겠다. 영화 '존 윅' 3번째 시리즈 이름은 '파라벨룸'(parabellum)이다. 라틴어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평화는 가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싼 것이다. 그래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하는 것이므로 어려운 것이다.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무력으로 상대방을 누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달리하면 전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본질이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전쟁이다. 강력한 신체, 정신, 지능을 갖춘 소수의 개체들만이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이 전쟁에서 제대로 승리한 인구는 전체의 0.82%를 차지한다. 100명의 아무개가 있으면 그중 1명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10대부터 30대 또는 40대까지, 약 2~30년에 걸친 전쟁이 펼쳐진다. 길고 고통스러운 전쟁이다. 견디고 버티기가 어렵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본질을 잊은 채 삼천포로 새어버리는 인원이 생긴다. 가는 여정 중간중간에 행복 엇비슷한 것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대게 화려하고, 마치 남보다 잘난 것처럼 보이게만 하는 효과를 지닌 것들이다. 또는 뇌의 신경체계를 망가뜨려 일종의 할루시네이션을 일으키게 만드는 물질들을 말한다. 할루시네이션은 일종의 환각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명품, 여자, 비싼 자동차, 비싼 집, 알코올, 니코틴, 마약류 등의 예시가 있겠다. 루이뷔통 마크가 부모를 지켜주지 않는다. 페라리가 형제를 지켜주지 않는다. 원나잇 상대가 평화를 주진 않는다. 한강 뷰가 내 사람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코냑이나 시가, 펜타닐, 코카인도 마찬가지이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여정에서 고통을 더 이상 직시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즉각적인 쾌락을 찾는 것이다. 한번 빠지면 몇 년 아니, 인생의 대부분이 후퇴한다.


이런 것들에 현혹되는 것을 막는 것이 대처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먼저 고통 자체를 줄여보겠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생각해 볼 수는 있으나 불가능하다. 앞서 말했듯 평화는 비싼 것이며, 전쟁을 통해 성취해야 한다. 전쟁에서 고통을 자의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은 허황된 것이다. 불가능하다. 고통을 줄이면 승리는 없다.


고통을 줄일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찾은 방법은 행복을 억지로 멀리하는 것이다. 행복 엇비슷한 것은 다른 말로 쾌락이라고 할 수 있다. 쾌락은 행복이 아니다. 대가 없이 빠르게 행복 엇비슷한 것을 가지려는 인간 본연의 본성에서 쾌락이 탄생한 것이다.


내가 내일 아침에 잠에서 깨면 행복해야만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는 것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었을 때 고통스러운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애초에 나는 행복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못을 박는 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할 사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 보자.


불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시는 법륜 스님을 알 것이다. 그분이 다람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먹는다. 그리고 다람쥐도 겨울을 나야 한다. 겨울에는 도토리가 없다. '다람쥐가 겨울에 먹을 도토리를 많이 모으지 못했다고 슬퍼서 자살하는 거 본 적 있느냐' 그렇게 물으셨다. 난 다람쥐가 도토리 잔고 부족으로 괴로워하며 소주를 들이켜 고주망태가 되거나,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적을 본 적이 없다.


고통을 내가 입고 있는 팬티라고 생각해라. 우린 항상 팬티를 입으니까 말이다. 그게 말이 된다. 평화를 원하는 이는 전쟁에서 전투 중인 사람이며, 항상 고통스러운 것이 정상이다. 거기서 행복 엇비슷한 것이 보이는 건 환상이며 쥐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에서 어느 정도 우위를 점하게 되면 진정한 행복은 내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찾아올 것이다. 진정한 행복이 아닌 행복 엇비슷한 쾌락은 내가 노력을 해서 찾아내어 내 몸에 발라야 한다는 차이점도 견지하고 있으면, 쥐약 가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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