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 신화
어제 상경을 하고 오늘 잠실 시그니엘 타워를 다녀왔다. 무슨 일이 있어서 갔다 온 건 아니고 그냥 갔다 왔다. 건물이 무지하게 높다 보니 근처에 갔을 땐 고개를 뒤로 뻐근하게 재껴도 꼭대기가 보이지 않았다. 동서남북으로 출입구가 4개 정도 나있었는데 경비가 삼엄했다. 각 입구마다 정장을 입은 장정 네댓이 보였다. 들어가 볼까 하다가 쪽수랑 덩치 보고 후퇴했다. 못 이길 것 같았다. 나는 경상도 특유의 이런 무식한 면이 있다. 왜 저들을 때려눕히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부터 하는지 참.
아무튼 입주민이 아닌 외부인이 들어가는 방법에는 호텔과 스카이라운지 이용이 있었다. 호텔은 찾아보지 않아도 비쌀 것이 뻔해서 스카이라운지를 알아보았다. FREE PASS의 경우 5만 원, 사전 예약을 하면 2만 9천 원의 입장료가 있었다. 내가 누구인가. 철옹성 같은 소비습관을 가진 투자자 아닌가. 당연히 안 샀다. 남자 혼자 가서 그거 본다고 가슴이 웅장해지진 않는다. 그리고 그 돈으로 제육볶음 사 먹을 거다.
시그니엘 레지던스의 매매가는 130억이다. 61평 기준이다. 월세라면 보증금 3억에 세가 3000만 원 정도이다. 입주민의 것으로 보이는 차들이 주 출입구 앞에 비상등을 켜고 줄 서 있었다. 발레파킹이 진행되고 있었다. 빨간 페라리, 검정 G바겐, 보라색 맥라렌 등이 보였다.
그러니까 거기가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 재수 없다는 둥의 말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도 부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열심히 산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인정할 수도 있겠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진 못했던 시그니엘이었다. 한국 최고 부촌을 직접 본 뒤, 내가 느낄 감정이 궁금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먼저 하고자 했던 일이 시그니엘에 가보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무식하게 높구나' 그런 생각만 하고 왔다. 그다지 심금을 울리는 느낌 같은 것은 없었다. 글에서 거짓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솔직한 글이 좋은 글이라고, 헤밍웨이가 그랬다.
나는 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흔히들 '갓생'이라고 말하는, 열심히 사는 젊은 인생 중 한 명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목표 자산이 있으며, 차후 10년 미래의 청사진이 머리에 명확하게 펼쳐져 있다. 돈의 양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시그니엘에 비해 적다. 아마 내가 늙다리가 되어 음식을 자꾸 입 주변에 흘리는 버릇이 생길 쯤이면 시그니엘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한마디로 나의 욕심은 시그니엘까지 가겠다는 크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돈에 대해 공부하여, 돈을 인격체로 대하는 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부모 형제,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걸 하자고 130억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나에게 시그니엘의 모습은 지나치게 우악스러웠다. 건물이 마치 자기를 좀 알아달라고 온 서울시에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1층의 경비원들에 의해 지켜지는 스카이 스크레퍼 고층에 있는 히노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지 않더라도, 가족 지키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좋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나의 상한선이 파악이 된 것이다. 비행기로 치면 적정 비행고도를 파악하게 된 것이다. 나는 누구든지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 버전의 자신이 될 수 있도록 고통을 감내하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리적인 조건을 고려했을 때, 그 최고 버전의 자신이라는 것에도 사람마다 순위를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조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조건은 신체적인 차이 또는 지능의 차이 등을 말한다.
따라서 중형 비행기 동체를 가지고 지나치게 높게 날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경주마처럼 사는 것은 되려 추락의 위험이 있다고 본다. 어릴 적 들어본 '이카루스 신화'처럼 말이다. 중형 비행기라면 그 비행기 내구성이 허락하는 수준에서 가장 높게 날고, 그에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유튜브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나처럼 '갓생'을 원하고 바라는 사람의 휴대폰일수록 수없는 성공자들의 영상으로 뒤덮여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새에 뇌가 과편향된다. 물론, 고양이 발작하는 영상이나 보며 낄낄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유익하다. 그러나 큰 성공자들에 대한 정보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자기 파괴적인 습관이 따라붙게 된다.
'왜 나는 저이 처럼 되지 못하나'하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이랄까. 그게 생각보다 아주 크게 작용하게 된다. 여기에 대한 깨달음을 오늘 얻은 것이다. 나의 깨달음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 버전의 자신이 되어라. 그리고 그것에 만족할 줄도 알아라.'이다.
스스로에게 한계를 짓는다고 말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 또한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선택한 방향이며, 그 결과도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것이 나의 자세이다.